며칠 전 세상을 떠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역이 화제였다.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과 함께 ‘봉황의 두 날개’에 해당하며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명당자리라고 한다. 이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묘역에서 터파기 작업 도중에 알 모양의 돌덩이가 7개 발견되었다. 이른바 ‘봉황알’이 나온 셈이니 풍수지리학상 길조라고 한다. 평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고인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으나, 언론에서는 모두 상서로운 징조라는 장례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일제히 보도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풍수나 여타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과학 연구를 업으로 삼다 보니 과연 그런 현상들을 어디까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에 더 초점을 두게 된다. 전직 대통령의 묘역에서 알을 닮은 돌덩이가 7개 나왔다고 해서 그게 왜 길한 징조인지, 길하다는 것의 과학적인 정의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한 개인이 자신과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풍수를 믿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지만, 적어도 국가장으로 치르는 전직 대통령의 장례와 관련된 언론 보도라면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지도자의 상서로운 기운에 기댄 경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한 언론에서는 흔치 않은 자연현상을 상서로운 기운으로 여기는 일이 많다며, 박 대통령이 체류하는 동안 베이징에 드물게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시원함과 상쾌함을 선사했다고 썼다. 방중 셋째 날 방문한 시안에서는 오랜만에 청명한 하늘이 열려, 날씨까지 상서로운 기운으로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도왔다고 한다. 같은 해 11월 박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또 다른 일간지는 “朴대통령, 버킹엄궁 들어서자 비 그치고 햇빛 쨍쨍”이라는 기사를 냈다. 올해 극심한 가뭄과 늦가을 장마를 겪고 있는 조국의 현실과는 무척 대비된다.
상서로운 날씨까지 도와준 탓인지 2013년 당시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는 삼성이었다. 그 해 1분기 점유율 7위였던 샤오미는 2014년 2분기에 삼성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2015년 2분기 기준으로 삼성은 5위까지 추락했다. 세계 시장에서 삼성은 여전히 점유율 1위이나 그 비율은 하락했다. 뿐더러 애플보다 2배 더 팔기는 했지만 영업이익은 애플의 3분의 1 수준이다.
비단 스마트폰이나 삼성만의 문제가 아님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기초과학분야에서도 중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입자가속기를 건설할 예정이다. 현존 최대 입자가속기보다 적어도 2배 이상 큰 규모를 계획하고 있어 상황에 따라서는 세계 기초과학의 판도가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대륙의 실수’가 ‘대륙의 실력’으로 전화된 지 오래다. 우주정거장도 보유했고, 위안화는 기축통화가 되었다.
그래도 우리에겐 봉황알이 있으니, 하늘이 아직 우리를 버리진 않은 모양이다.
이종필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BK사업단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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