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부산 사상경찰서에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아시아ㆍ태평양 지식재산권 총괄매니저인 일레인 잉 등 애플(Apple)社 관계자 3명이었습니다. 이들은 경찰수사에 고마움을 표하고자 직접 경찰서를 찾았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사건은 지난달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부산 사상경찰서는 100억원 상당의 중국산 ‘짝퉁’ 스마트폰 부품을 유통시킨 혐의(상표법 위반)로 윤모(53)씨를 구속하고 일당 5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이들 부품에는 애플사 등 유명 스마트폰 브랜드의 로고가 박혀있었습니다. 짝퉁 부품의 출처는 아시아 최대 전자상가로 급부상 중인 중국 선전시 화창베이. 가뜩이나 중국 전자제품 업체인 ‘샤오미’의 성장으로 골머리를 앓던 애플로서는 짝퉁 시장의 형성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을 겁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간과해서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왜 짝퉁 스마트폰 부품을 쓰지?’라는 질문 말입니다. 윤씨 등은 붙잡히기 전인 올해 9월까지 약 1년 간 짝퉁 부품으로 21억원 상당의 이익을 남겼습니다. 짝퉁 부품 시장의 형성에 따라 가능한 일이었죠. 소비(수요)가 생산을 유도한다는 건 잘 알려진 경제논리입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정품을 선호하지만 부담은 비용에 있습니다. 이 기사가 나왔을 때 한 누리꾼은 “액정이 깨지면 사설업체에선 싸게 강화유리만 갈아주는데 AS센터에서 LCD까지 교체하라면서 비싸게 받으니…”라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애플사는 ‘리퍼’서비스라는 독특한 사후관리(AS) 정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리퍼란 고장 난 아이폰을 가져가면 다른 제품으로 교체해주는 방식인데 도입 초기 무상에서, 유상으로 바뀌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소비자평가 리서치기관 ‘컨슈머인사이트’는 지난 9월 ‘올해 상반기 스마트폰 AS 만족도 조사’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1,000점 만점에 LG 772점, 삼성 764점, 애플 677점으로 나타났습니다. 컨슈머인사이트는 그 배경으로 애플의 유상 수리율이 전년도보다 크게 늘어났고 평균 수리비도 애플(26만5,000원)이 삼성(10만5,000원)과 LG(11만6,000원)보다 높은 점을 꼽았습니다.
이 같은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언급된 바 있습니다. 지난 9월 14일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배덕광(새누리당) 의원이 증인으로 나온 애플코리아 리처드 윤 대표에게 리퍼 정책을 질타한 것이죠. 배 의원은 “부분 수리가 불가능하고 작은 부품 교체에도 일주일 이상 기다리게 해 40만원 상당의 리퍼폰을 사실상 강매하는 등 불공정한 AS 정책이 여전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윤 대표는 “리퍼폰 지급은 애플의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 당분간 리퍼 정책에 대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사는 짝퉁 부품시장에 회초리를 든 경찰이 반가웠을 겁니다. 부산 사상경찰서를 방문한 일레인 잉씨는 “수사기관에서 대규모로 단속을 벌인 것은 첫 사례”라며 “최근 중국 선전지역에서 쏟아지는 짝퉁으로 인해 곤혹을 치르고 있던 차에 (짝퉁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모조품으로 인해 애써 만든 개발자의 지적 재산권이 침해 당하는 것은 당연히 막아야 합니다. 다만 소비자들이 짝퉁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번쯤 고민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부산=정치섭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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