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고시 폐지를 미룬다는 발표를 듣고 긴장이 확 풀리는 듯 기분이 좋았지만 아주 잠깐이었어요.”
4일 오후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만난 김모(29)씨는 이날도 급히 점심을 먹고 고시학원으로 들어가던 중이었다. 김씨는 7년째 이런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장수 고시생이다. 그는 “아마 이대로 결정이 날 가능성이 크겠지만 선발인원도 미지수고 새로 진입하는 어린 학생들도 있을 것 같아 마냥 기쁘기만 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사시를 2021년까지 4년 간 더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튿날 ‘고시의 메카’ 신림동 고시촌은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한 모습이었다. 점심 무렵이 되자 고시원에서 쏟아져 나온 수험생들은 가벼운 옷차림에 요약정리를 한 메모지나 제본 노트를 손에 들고 각자 식당으로 향했다. 인근 H법학원에서도 쥐 죽은 듯 수업에만 열중할 뿐 사시 폐지 연기 발표로 술렁이는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속내에서는 안도감과 초조함이 미묘하게 교차했다. 고시생들은 몇 해라도 시험 기회가 늘어났다는 생각에 안심하면서도 식당과 학원 휴게실 등에 삼삼오오 모여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고충을 나눴다. 2017년 최종합격을 목표로 시험을 준비 중인 홍모(24)씨는 “기회가 늘어나 여유가 생겼다는 측면에서 대부분의 고시생들이 크게 반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반면 6년 차 고시생 유권상(28)씨는 “입법부가 로스쿨생들의 반응을 얼마나 수용하는지에 따라, 그리고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갑자기 결정이 달라질 수도 있어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덤덤해 했다.
사시 존치가 법무부의 입장일 뿐 아직 입법부의 최종 결정이 남아있다는 점은 여전히 고시생들을 불안케 하는 요소다. 1차 시험에 합격 뒤 2차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김모(35)씨는 “어제 2021년까지 연장됐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는데 오늘은 또 법무부에서 최종 결정된 게 아니라고 하니까 힘이 쫙 빠진다”며 울먹였다.
고시촌 상인들은 상권 활성화를 크게 기대하는 눈치였다. 이곳에서 8년 동안 식당을 운영해 온 심모(52)씨는 “점심 때 방문한 단골 아가씨 손님도 한시름 놓았다며 너무 기뻐하더라”며 “장사가 잘 안 돼 다른 동네로 가게를 이전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1, 2년 정도 영업을 더 해볼까 싶다”고 했다. 고시 교재를 판매하는 서점 주인 이모(47)씨도 “10년 전 호황기 때와 비교하면 매출이 80%나 떨어져 아르바이트 학생들도 모두 내보낸 상황”이라며 “주문이 늘기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신혜정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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