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국회를 통과한 386조3,997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을 둘러싼 뒷말이 무성하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막바지면 으레 횡행하는 ‘쪽지 예산’ 관행에 변함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실제 ‘지역용’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증액이 여느 때보다 두드러졌다.
막판 예산 심의 과정에서 정부 원안보다도 늘어난 지역 SOC 예산만 6,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계획조차 없던 SOC 사업 예산만도 1,000억원에 가깝고, ‘용역비’‘설계비’등도 적지 않다. 급히 끼워 넣은 이런 사업에는 머잖아 본예산이 거의 자동적으로 배정되게 마련이다. 당장의 지역 SOC 예산 증액도 문제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날 최종 사업비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지역 SOC 사업비 증액이 여야의 텃밭인 대구ㆍ경북(TK)과 호남 지역에 집중된 것도 볼썽사납다. 울산~포항 복선전철(300억원), 영천~언양 고속도로(175억원), 대구선 복선 전철(70억원), 광주~목포 호남고속철도(250억원), 보성~임성리 철도(250억원), 군장산단 인입철도(100억원)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해당 지역구 의원들은 “절대로 무리한 예산 배정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으지만, 현지에는 ‘이번 △△△ 예산 증액은 ○○○ 의원의 공(功)’이라는 말이 파다하고, 스스로의 활약을 자랑하는 의원들의 인터뷰가 실제로 지방언론에 잇따라 보도되고 있다.
이들 의원들은 지역 유권자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가슴 뿌듯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돈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혈세로 충당해야 한다. 더욱이 급히 끼워 넣은 개발사업이라면 국가 전체적 SOC 개발 수요나 경제적 타당성, 우선순위 평가 등이 제대로 됐을 리 없다. 그만큼 혈세 낭비 우려는 커진다. 따라서 이들은 지역구에서 자랑을 늘어놓기 전에 지역 대표성 못지 않게 중요한 ‘국민 대표성’을 크게 해친 데 대해 자괴해야 마땅하다.
그나마 정부라도 정신을 바짝 차렸으면 다행이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최근 한 달 사이 정부가 발표한 SOC 사업만도 5건이고 총 사업비 규모는 14조원이 넘는다. 지난달 10일 제주 2공항, 서울~세종 고속도로, 월곶~판교ㆍ여주~원주 동서철도 간선망 사업 등을 한꺼번에 내놓더니 3일에는 울릉공항과 흑산공항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국토교통부는 “우연히 일정이 몰린 것”이라고 밝혔지만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색채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하고 있다.
당장의 수요에 대응할 필요 최소한의 SOC 개발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관련 논의가 무르익기도 전에 국회와 정부가 앞을 다투듯 SOC 개발에 나서는 모습처럼 볼썽사나운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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