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화채 연지원양팔옥문대관
법화채도자기(법화기)는 민요다. 민요와 관요의 가장 큰 차이는 가격이다. 법화기의 경우 국제경매에서 3억원 정도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거래된다. 법화채는 첫눈에 보면 약간 투박하고 서민적이며 세련미는 없다. 하지만 자연스러우며 남색·자색·호박색이 어우러지면서 그려내는 멋이 있다.
법화기는 법화(法花)나 분화(粉花)라고도 하며 원대 중후기에 시작됐고, 명대 중기에 진남 일대에서 성행하였던 독특한 풍격의 자기다. 현존하는 대부분 법화기는 경덕진 민요산이다. 산서의 법화기는 민요자기로 도태이며 태체가 견실하지 못하고 부착력이 떨어져서 박유(껍질이 벗겨짐)와 마손이 심해 전세품이 비교적 적고 상태가 나쁘다. 또한 민요의 한 종류로 문화적 지역적 영향을 받아 제적과정에서 임의성이 강하게 스며들어 예술적 가치가 떨어진다.
아울러 법화기 전체 색조가 흑색이나 자색으로 이러한 색조는 비록 명쾌하지만 중국인이 선호하는 전통적인 색채가 아니라 법화는 시종일관 많은 사랑을 받지는 못하였다.
법화의 제적과정은 다음과 같다. 물레를 이용하여 성형하거나 모인법으로 성형한 배체 위에 슬립으로 선을 만들어 붙인 후 고온으로 초벌구이를 한 뒤에 다시 도안에 따라 남색, 백색, 황색, 자색, 녹색, 공작람 등의 저화도 색유를 칠하여 저온에서 재벌구이하여 완성한다.
'음류재설자'에는 법화기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다. 법화는 원대에 발생하여 명에 성행하였다. 대략 북방요에서 소성되었는데 산서성 포주 일대의 것이 가장 아름다웠다. 보석과 같은 깊은 남색, 자수정과 같은 깊은 자색, 투명한 호박같은 황색이 있다. 그 장식은 생물·화초의 다양한 종류였다. 평양(지금의 임분) 곽주에서 나온 것은 태질이 반와질이며 남색은 대략 자색을 띄고 녹색은 대략 흑색을 띄므로 모두 정품이 아니다. 서안 하남에서 나온 것은 확주의 것보다 선명하고 다만 속성이 자태이다
민국시기 조여진의 '고완지남'(1942년 출판)에 따르면 법화는 원대에 시작되어 청대 초 민간에서 제작되었으며, 청 옹정 이후 정지되었다고 전해진다.
법화는 대개 모두 북방의 요지에서 생산되었으며 산서성 포주일대에서 생산된 것이 가장 우수하다. 명대후기 경덕진요에서 선서법화기의 모방을 하였고 이로부터 산서법화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경덕진의 법화기는 견실하고 화려하였으나 북방문화의 풍격을 상실하여 기물전체가 아기자기하게 변화하였다. 산서법화기와 경덕진 법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태토와 유색이다. 산서 법화기의 유색은 남색·공작록·황색·자색·백색이 주종이다. 반면 경덕진 법화기의 유색은 황색과 녹색이 주종이다.
첸쩡샤는 '중한고미술협회'이사로 1,000여점의 중국도자기를 두루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CC'는 중국도자기(Chinese ceramics)를 뜻한다.
채준 기자 doorian@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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