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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부인과 별거하며 자녀들이 장성하도록 돌보지도 않은 남편은 이혼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혼사건에서 유지하기로 한 ‘유책주의’에 따른 판결로,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 났어도 그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A씨(70)가 부인 B씨(67)를 상대로 낸 이혼청구 소송을 기각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1973년 아내와 결혼했다. 그러나 A씨의 잦은 외박과 외도로 혼인 초부터 부부 관계는 금이 갔다. 사실 그는 아내가 아닌 옛 애인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그는 종갓집 종손이라서 출산을 할 수 없는 그녀와의 혼인을 접어야 했다. 마지못해 B씨와 결혼해 3남매를 낳았지만 A씨는 결국 1984년 부부싸움 끝에 집을 나가버렸고, 이후 31년 동안이나 따로 살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A씨는 옛 연인과 함께 고향에 내려가 부부로 살았다.
버려진 아내는 자녀들을 홀로 키웠고, A씨는 양육비를 주지도 않았다. 종갓집 맏며느리인 아내는 시부모 봉양에 시증조부 제사까지 모셨다. 그런데도 이혼을 청구한 쪽은 A씨였다.
1심은 A씨의 손을 들었다. 재판부는 “30년 넘게 별거해 혼인관계가 파탄이 난 만큼 이런 혼인관계를 강제로 유지하는 것이 A씨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두 사람 모두 따로 살기만 할 뿐, B씨 역시 관계 회복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민법 840조 6호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2심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된 주된 책임은 결혼 초기부터 외박과 외도를 해 가정에 소홀하다가 결국 집을 나가버림으로써 처와 자녀들을 악의로 유기한 A씨에 있다”며 “혼인 파탄에 책임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파탄을 사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이 같은 판단이 맞다고 봤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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