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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초코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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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초코파이

입력
2015.12.0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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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많은 한국 사람들 중 다른 건 몰라도 러시아에 대해 분명히 아는 게 한 가지 있다. 러시아에서 한국 초코파이가 유명하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서 “러시아 사람들은 초코파이를 엄청나게 좋아해 매일 밥처럼 먹는다며?” 하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전혀 엉터리 이야기는 아니다.

1990년에 러시아연방은 민주주의 개혁의 경향을 타고 대한민국과 수교를 했다. 수교로 인해 새롭고 큰 시장에 들어갈 수 있는 한국 기업에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렸다. 1993년에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러시아 최초로 한국 식품을 파는 가게가 생겼다. 그 가게 주인은 롯데그룹이었고 품목은 그리 다양하지 않았지만 그 중에 오리온 초코파이가 있었다.

당시 심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러시아는 국내에서 과자는커녕 필수 식품마저도 생산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가가 아니면서도 수입품이라는 매력까지 있는 초코파이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한국 회사가 러시아 시장에서만 매달 30만 박스의 초코파이를 판매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 집은 못 사는 집이어서 냉장고에 고기나 생선은 없어도 초코파이는 자주 본 기억이 난다.

러시아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서면서 러시아에서 초코파이 판매량은 줄고 있지만 오리온은 다른 품목을 시장에 소개해 총 수익은 늘었다. 언론에 소개된 통계를 보면 현재 오리온은 40개 국가로 수출하고 있는데 전체 수출의 90% 이상이 러시아와 중국 시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리온 과자가 인기 있는 이유는 중국과 러시아가 다르지만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오리온은 이런 추세를 타고 러시아 시장에 더 침투하기 위해 2006년 모스크바에서 조금 떨어진 트베리시에 공장을 세웠다. 그런데 러시아 언론을 통해 러시아 공장에서 만드는 초코파이에는 한국산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가격이 싼 중국산 재료를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당시 러시아에서 금기 식품 목록에 올라있던 중국산 분유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오리온 측에서는 실제 중국산 분유를 쓴 적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한국에서 만들어 수입되는 초코파이와도 전혀 무관한 일이었지만 그런 유의 이야기들이 전체적으로 러시아내 초코파이 판매에 영향을 줄 수는 있었을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초코파이 판매량이 떨어진 이유로 ‘이미지’의 변화도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소련이 붕괴되며 극도로 가난했던 1990년대의 러시아에서는 수출품이면 무조건 품질이 좋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미국에서 흘러온 청바지나 옷도, 유럽에서 처음으로 러시아 시장으로 들어온 치즈도, 한국에서 수입한 초코파이도 그랬다. 소련 시절에는 수입품이 금기 물품이어서, 연방 붕괴 후 접한 해외 물건들은 ‘우리도 이제 서방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을 안겨주었던 때문이다. ‘Made in Korea’라는 상표 역시 폭발적인 인기였다.

그런 분위기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변했다. 해외 식품과 경쟁할 만한 러시아산 식품이 우르르 나오기 시작했고 국내산 식품을 사서 먹자는 홍보 캠페인도 벌어졌다. 그러는 사이 초코파이는 과거의 뭔가 있어 보이는 수입품 간식거리의 이미지는 줄어들게 되었다. 러시아에서의 인기가 한창 때만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랬던 분위기가 다시 반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3년 이후 서방의 러시아 경제제재로 러시아 시장에서 유럽이나 미국산 수입 식품이 사라진 가운데 모스크바에서 한류가 점점 확산되면서 ‘Made in Korea’의 인기가 다시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주로 한국 드라마나 영화, 옷, 화장품 등이 유명세를 얻고 있다. 이 같은 바람을 타고 초코파이가 다시 예전의 인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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