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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줄다리기, 아시아 공동의 문화유산

입력
2015.12.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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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줄다리기는 여러 개의 새끼줄을 꼬아 만든 거대한 줄이 사용되는 마을공동체의 주요 행사다. 문화재청 제공
한국의 전통 줄다리기는 여러 개의 새끼줄을 꼬아 만든 거대한 줄이 사용되는 마을공동체의 주요 행사다. 문화재청 제공

2일 나미비아 빈트후크에서 열린 제10차 무형유산보존협약 정부 간 위원회는 한국과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이 공동으로 신청한 줄다리기(Tugging Rituals and Games)를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어렸을 적 가을운동회에서 경험한 줄다리기를 떠올린다면, 줄다리기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이야기가 황당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줄다리기는 어떻게 한국과 동아시아의 무형유산으로 인정받은 것일까요?

줄다리기의 기원은 전쟁

줄다리기는 사실 전세계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와 중국에서도 줄다리기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서양의 줄다리기는 본래 군사 훈련의 일종이었다가 16~17세기 들어 운동경기로 발전했다고 하며, 1900년부터 1920년까지는 올림픽 정식 종목이었습니다. 올림픽종목에서 퇴출된 후에도 1960년 세계줄다리기연맹(TWIF)이 창립돼 꾸준히 세계 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동양의 경우, 중국의 역사서인 ‘수서(隋書)’에 따르면 줄다리기의 기원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초(楚)가 장강(長江ㆍ양쯔강)에서 오(吳)를 상대로 펼쳤다는 수전(水戰)에 있다고 합니다. 전쟁 때 퇴각하는 상대의 배에 밧줄을 매달고 끌어당겨 도망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하는데요. 이때부터 당나라 때까지 줄다리기는 씨름과 함께 군사 훈련인 강무(講武)의 일부였고 그 후 민간에 보급됐다고 전합니다.

베트남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응오 왕조(吳朝)가 10세기에 침입해 오는 중국군을 강에서 막기 위해 상대 군사의 배를 줄에 묶어 끌고 헤엄쳐 갔는데 이것이 베트남 줄다리기의 기원이라 합니다.

풍년을 바라는 공동체 행사

그러나 동아시아 민간에 보급된 전통 줄다리기는 전쟁의 형식만 빌릴 뿐, 실제로는 풍작을 바라며 거행한 의식이었다는 설명이 일반적입니다. 줄다리기용 줄을 만들 때는 암줄과 숫줄을 따로 꼰 후 둘을 하나로 합쳐 굵은 줄을 만드는데, 이는 성적인 결합과 다산을 의미합니다. 결국 자연이 곡식과 동물을 많이 생산해 더 많은 수확물을 거두게 해 달라는 뜻이죠. 한국에서는 줄다리기가 대부분 정월 대보름에 이뤄지는데, 줄다리기가 남아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줄다리기는 파종하기 직전 시점에 진행됐습니다. ‘수서’에도 줄다리기는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라고 적혀 있습니다.

공동체 의식의 형성도 중요한 효과입니다. 충남 당진시 기지시줄다리기의 전승을 보면 하룻밤 사이에 육지가 바다로 변하는 참변을 겪게 되자 이 고장을 지나는 철인(哲人)이 “제사를 지내고 줄다리기를 해야 재난이 물러간다”고 말한 것이 기원이라 합니다. 마을 단위의 고난을 물리치고 하나의 공동체로 합심하기 위해 줄다리기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기지시줄다리기와 경남 창녕군 영산줄다리기, 류큐 왕국의 풍습을 이어받은 오키나와의 오오쓰나히키(大綱引き)에서 사용하는 줄의 단면 지름은 1m가 넘습니다. 이런 줄을 만들려면 수백 개의 새끼줄을 꼬아 거대한 줄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실제 줄다리기를 할 때는 마을을 둘로 나눠 선의의 경쟁을 벌이게 되는데, 이 때는 물에 가까운 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하여 대부분 물에 가까운 쪽이 승리했다고 합니다.

벼농사 문화권과의 연관성은 논쟁

줄다리기가 벼농사 문화의 특징을 대변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줄의 주재료가 쉽게 구할 수 있는 볏짚이고, 한반도에서도 남부, 그 중에서도 수전(水田)농업이 가능한 강과 바다가 인접한 곳에서만 줄다리기가 주로 나타난다는 것이 주요 논거입니다. 한국 외에 전통 줄다리기가 집중적으로 나타난 바 있는 국가는 일본, 중국, 대만,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 등인데 모두 벼농사가 있었던 지역입니다.

여기에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밧줄 재료로 볏짚을 쓰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뿐이라는 겁니다. 중국은 요즘 전통 줄다리기를 거의 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삼베와 대나무, 칡, 억새 등을 써 줄을 만들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삼베, 대나무와 등나무줄기 등이 쓰였고 필리핀에서는 긴 막대를 줄 대신 사용한 사례도 있습니다. 한국의 줄다리기도 주술의 적용 범위가 벼농사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줄다리기를 마치고 남은 새끼줄을 들고 어선을 타면 만선을 이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동아시아 공동의 유산

이번 등재를 두고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중국의 줄다리기를 한국이 빼앗아 갔다”고 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줄다리기는 중국의 과거 줄다리기와 유사하기 때문에 중국 기원설이 유력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국도 한국의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와 당진시의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이 줄다리기의 보존과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노력해왔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더구나 이번 줄다리기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는 동남아시아 문화권 국가들과 공동으로 진행한 것입니다. 줄다리기를 특정 국가만의 것이라고 주장하기보다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함께 이어 온 문화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현대 줄다리기에는 주술적 의미가 사라졌습니다.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운동회에서 흔히 열리는 줄다리기가 한국의 농촌에서 열리던 전통 줄다리기의 직계 후손이라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국가지정무형문화재인 당진 기지시줄다리기와 창녕 영산줄다리기는 일제 시대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라졌던 것을 국가의 지원으로 부활시켜 관광 상품화한 행사입니다. 하지만 공동체의식을 줄을 당기면서 힘껏 소리를 지르고 땀을 흘리는 즐거움, 여럿이 모여 거대한 줄을 만들며 형성되는 대동(大同)의 의식 자체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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