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있는 복싱선수가 위기에 처한다. 부양해야 할 자녀가 있는데 악재가 겹치고 겹친다. 돈은 없고 친구도 떠나고 주변의 시선도 냉랭하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밑천은 두 주먹뿐. 복싱선수는 과연 역경을 딛고 밑바닥을 탈출할 수 있을까.
익숙한 이야기다. 나락에 떨어진 복싱선수가 가족을 위해 다시 새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 줄기만으로 ‘영화 ‘사우스포’는 관객과 불리한 게임을 한다. 뻔하면서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기는 어렵다.
영화는 예상대로 흐른다. 고아원 출신의 빌리(제이크 질렌할)는 패배를 모르는 세계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다. 고아원에서 만난 아내 모린(레이첼 맥애덤스)의 힘이 컸다. 하지만 모린이 총탄에 숨지는 사고로 빌리는 복수심과 죄책감으로 자학의 늪에 빠지고 부와 명예, 딸의 양육권마저 잃게 된다. 빌리는 빈민가에서 복싱으로 불우청소년을 선도하는 틱(포레스트 휘태커)을 찾아 재기를 모색한다.
질렌할이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에 신선함과 긴장감을 선사한다. 선이 가는 얼굴 때문에 유약한 역할을 해왔던 그는 근육질의 성마른 복싱선수로 변신해 빼어난 연기력을 과시한다. 빌리의 불타오르는 분노와 좌절의 심연은 그의 커다란 눈망울을 통해 실체가 된다. 부성애라는 감정은 질렌할의 연기를 촉매 삼아 질감과 온기를 지닌 어떤 물질로 변형된다. 질렌할이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옥자’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를 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너무 익숙한 전개라 초반 지루하게 여겨지던 이야기는 중반을 거쳐 절정을 향하면서 흥미를 돋운다. 질렌할의 연기 덕도 있지만 실감나는 복싱 경기 장면이 상투성을 완화한다. 협잡에 능한 백인들이 경기를 주선하고 흑인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선수로 등장하는 여느 복싱 영화와 다른 점도 인상적이다. 빌리의 복싱 실력을 악용해 돈을 버는 복싱 프로모터는 흑인 조던(가수 50센트가 연기했다)이다.
‘트레이닝데이’(2001)와 ‘백악관 최후의 날’(2013) 등을 만든 안톤 후쿠아 감독이 메가폰을 쥐었다. 후쿠아 감독은 이병헌이 출연한 ‘황야의 7인’의 내년 개봉도 앞두고 있다. 3이 개봉했다. 15세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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