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을 퇴소하겠습니다.”
제가 컨설팅하는 한 어린이집의 사례입니다. 한 아이의 어머니가 원장님을 찾아와 자녀를 다른 어린이집으로 보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유는 “이 어린이집에서는 너무나 공부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공부를 많이 가르쳐 주는 다른 어린이집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직접 상담하지는 않았는지라 어쩔 수 없었지만, 이러한 경우는 매우 안타까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공부가 무엇입니까?
아기는 어머니의 생명주머니에서부터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에 이미 공부를 시작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울음도 하나의 공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울어야지만 어머니와 가장 효율적인 대화가 될 수 있는지 스스로 우는 가운데 터득해갑니다. 그래서 울음 그 자체가 바로 학습화되는 겁니다. 이와 같이 아기에게는 어머니의 젖을 빠는 것도 공부가 될 것이고, 배변활동이나 식사활동도 매우 큰 공부가 되는 겁니다. 이러한 울음, 배변, 식사 등에서 충분한 성취감을 얻을 수 없는 아이들은 평생을 두고 긍정심이나 만족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점점 자라면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세상을 배워 나갑니다.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뛰놀거나 게임을 하거나 여러 가지의 다채로운 활동을 하는 가운데 아이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되고, 같고 다름을 알게 되는 가운데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번 더 말하자면, 책상에 앉아 수학문제나 영어문제를 하나 더 푼다고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총체적인 능력을 키우려면 실컷 놀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겠습니다. 예컨대, 딱지놀이를 한다면 아이들은 딱지를 여러 가지의 재질로 만들면서 다양한 종류의 촉감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색감도 익히게 될 것입니다. 딱지를 여러 개 만들면서 손의 힘을 기릅니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딱지를 칠 때 어느 방향으로 쳐야 될까? 어떤 각도로 쳐야할까? 내려치는 힘은 어느 정도로 주어야 할까? 내려치는 속도는 어느 정도로 해야 할까? 상대방의 딱지를 따려면 나의 딱지는 어떤 크기로, 어떤 종류의 종이로 만들어야 할까? 이런 저런 생각들을 모아 행위로 자아내게 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이나 행동들은 책상 앞에서 단편적으로 읽으며 외우는 영어나 수학문제보다 헤아릴 수 없이 큰 능력을 신장시킵니다.
놀이는 홀로 놀 수도 있지만, 소그룹으로 대그룹으로도 어울릴 수가 있으며 실내에서 놀 수도 있고 실외에서 놀 수도 있습니다. 놀이하는 가운데 신체발달과 언어발달, 사회성과 탐구심뿐만 아니라, 인성발달과 창의성 개발 등 통합적인 발달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의도적으로 놀이를 할 수도 있지만, 노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많은 부분의 발달을 도모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우리 삶은 예측하기 어려운 변주의 연속입니다. 인류가 생긴 이래로 학교에서 쌓은 ‘지식’만으로 세상을 훌륭하게 살아낸 사람은 없습니다. 위대하거나 행복한 삶을 살았던 이들은 대게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서 삶의 다양한 국면을 헤쳐 나갈 지혜를 완성시킨 분들입니다. 그런 지혜들은 성장 과정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활동과 놀이가 첫 단추가 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웅숭깊고 종합적인 공부를 외면하고 오로지 학교 공부에만 매진하게 한다면 우리는 결코 온전한 지혜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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