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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정말 3차 대전의 전조일까

입력
2015.12.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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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을 연상시키는 시리아 사태

‘전쟁을 위한 전쟁’은 더 이상 없어야

시리아사태 해결 위한 국제단합 절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터키 전투기의 러시아 전폭기 격추 사건과 관련 "이번 사건은 테러리스트의 공범(터키)이 등 뒤에서 칼을 꽂은 행위"라고 비난했다. 사진은 푸틴 대통령이 이날 소치에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회동 중인 모습. 소치=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터키 전투기의 러시아 전폭기 격추 사건과 관련 "이번 사건은 테러리스트의 공범(터키)이 등 뒤에서 칼을 꽂은 행위"라고 비난했다. 사진은 푸틴 대통령이 이날 소치에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회동 중인 모습. 소치=AP연합뉴스

CNN방송은 터키의 러시아 전폭기 격추사건 이후 “1차 세계대전 때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보도했다. 시리아에 대해서는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이 일어났던 사라예보 같은 국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작은 3차 대전의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잠시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1914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의 총탄에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암살되면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저무는 제국이었다. 민족주의는 이질적인 민족 언어로 뒤섞여 있던 제국의 가장 큰 위협이었고, 뇌관은 슬라브주의로 무장한 세르비아였다. 합스부르크 왕조에서 두 나라로 쪼개지면서 내리막길을 걷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의 격렬한 봉기에 맞닥뜨린 것은 역사적 필연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암살사건이 제국주의에 대한 민족주의의 저항이라는 1차 대전으로 비화한 것은 불안하게 유지되던 유럽의 세력균형이 깨지면서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보복하기 위해 동맹국 독일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독일의 프랑스 침공도, 세르비아의 후견국을 자처하던 러시아와 영국 미국이 잇따라 반 독일 전선에 서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독일 편에 가담해 전 유럽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상황은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금은 어떤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미국은 시리아와 새로운 전쟁을 벌일 처지가 아니다. 프랑스가 반테러 연합을 형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도 “지상군 파병은 없다”고 발을 빼고 있다. 미국이라는 제국이 저물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게 무리는 아니다.

다양한 민족, 종교로 찢겨 용광로처럼 끓고 있는 시리아는 100년 전 세르비아가 그랬듯 분노의 탈출구를 찾고 있다. 소수 이슬람 시아파 정권에 다수의 수니파가 맞서고 있고, 쿠르드족 투르크족 등 소수민족들은 저마다의 고토(故土) 회복을 꿈꾸며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는 내전에 휩쓸려 있다.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100여년 전 영국과 프랑스가 일방적으로 그은 시리아-이라크 국경을 허물고 수니파의 영토를 되찾겠다는 명분으로 전세계와 테러전쟁을 벌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전폭기 격추사건이 재발하면 반테러 연합에서 빠지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전폭기의 비행경로를 미국에 사전 통지했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동맹국(터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미국을 비난했다. 전폭기 격추의 배후가 미국이라는 것이다. 이란과 함께 시리아정부 편에서 서방과 갈등을 빚고 있는 러시아의 입장은 1차 대전 때 유럽이 삼국동맹(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과 삼국협상(영국 프랑스 러시아)으로 갈려 ‘진영(陣營) 전쟁’을 벌이던 때를 연상시킨다.

1차 대전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던 전쟁이었다. 유럽 제국들이 집단논리에 끌려 들어가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면 황태자 암살사건은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국지전으로 끝났을 것이고, 1차 대전의 앙금에서 비롯된 2차 대전도 피할 수 있었을 지 모른다.

지금 세계가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비같은 어리석은 전쟁을 다시 벌이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가 전쟁의 도화선으로 변질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그렇잖아도 세계는 곳곳이 지뢰밭이다. 아시아 회귀를 선언한 미국과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앞세운 중국의 패권다툼은 갈수록 격렬해질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사태에서 보듯 러시아의 팽창 움직임도 노골적이다. 반미 목소리를 내는 러시아와 중국 역시 중앙아시아 이권에서는 소리 없는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터키의 러시아 전폭기 격추사건이 보복전쟁으로 비화할 것 같지는 않지만, 시리아 내전은 이와 유사한 사건이 얼마든지 재발할 환경을 갖추고 있다. 어느 것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마지막 지푸라기가 될 지 모른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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