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훈 한국가스공사장. 연합뉴스 제공
국내 30개 공기업들이 올해 직원을 채용하면서 여성을 20%도 뽑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올 3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취업자 중 여성 취업자의 비율인 42.4%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공기업들은 업종의 특성상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제조분야 인력을 주로 채용하기 때문에 여성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여성단체는 "여성을 덜 뽑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성차별"이라고 반발했다.
▲ 한국가스공사는 여성 채용비율을 2012년 27.8%에서 2015년 4.1%로 급격히 축소했다. 관계자는 채용인원 상당수가 기술직이라 필연적으로 여성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대구 동구의 한국가스공사 본사의 모습. 연합뉴스 제공
■ 더 높아진 공기업 여성 취업 문턱
2일 CEO스코어의 조사에 따르면 30개 공기업들이 채용한 직원 중 여성은 19.6%에 불과했다. 전체 채용인원 2,501명 중 490명이다. 2012년 25%가 여성 채용자였던 것에 비교하면 5.4%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특히 30개 중 10개 공기업은 여성을 전혀 뽑지 않았다. 한국동서발전, 대한석탄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들과 울산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부산항만공사 등 해양수산부 산하 공기업, 그리고 한국조폐공사와 한국감정원, 한국관광공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등이다. 이들이 채용한 직원은 총 41명이었다.
이중 광물공사, 부산항만공사, 한국관광공사는 2012년에는 각각 48.6%, 47.1%, 63.3%의 여성을 뽑았지만 올해는 한두 명의 남자만 채용했다.
그밖에 공기업들 상당수는 여성을 뽑긴 했지만 비율을 많이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가스공사는 2012년 27.8%를 여성으로 채웠지만 올해에는 4.1%의 여성만 채용했다. 여성 채용자 비율을 23.7% 포인트나 줄인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도 여성 채용자를 2012년 28.8%에서 올해 10%로 18.8%포인트나 축소했다. 한국서부발전도 2012년 18.3%에서 12.3%로 13%포인트나 여성 채용 비율이 낮춰 여성 채용을 10%포인트 이상 늘린 공기업들에 포함됐다.
한국중부발전(24.2%→14.5%), 한국전력공사(31.3%→24.5%), 한국도로공사(22.6%→17.6%), 한국공항공사(31.6%→27.3%), 한국남부발전(18.3%→14.5%) 등도 여성 채용비율을 줄인 기업들이었다.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센터는 2012년 45.2%에서 올해 42.9%로 2.3%포인트 여성채용률을 줄였지만 국내 여성 취업자 비율(42.4%)보다는 높았다.
한국수자원공사는 2012년 222명 중 40명(18%)에서 올해 165명 중 30명(18.2%)을 뽑아 여성 채용률이 소폭 상승했다. 한국지역난방공사(20.2%→23.4%)와 한국남동발전(13.8%→18.2%) 등도 적게나마 오름세를 보였다. 주택도시보증공사(38.1%→39%)는 여성 채용률 상승폭이 작지만 취업여성비율에 근접한 수준을 유지했다.
같은 기간 해양환경관리공단은 16.3%에서 27.3%로, 한국마사회는 21.4%에서 39.2%로 여성채용률을 높였다. 여수광양항만공사는 2012년 여성을 채용하지 않았다가 올해 25%를 뽑았다. 이들은 여성 채용률을 10% 이상 올린 공기업이다.
국내 여성 취업자 비율보다 여성 채용률이 높은 기업은 앞서 언급한 제주도시개발센터와 인천국제공항공사(38.9%→50%), 한국석유공사(37%→50%) 등 세 곳에 불과했다.
▲ 대한석탄공사는 2012년과 2015년 한 명의 여성도 채용하지 않았다. 관계자는 채용인원이 전부 채탄부 등 여성을 뽑을 수 없는 직종이며 다른 직종은 5년 전부터 채용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작년 12월 원주혁신도시에 준공된 석탄공사의 신사옥. 연합뉴스 제공
■ "불가피한 현상" VS "핑계일 뿐"
상당수 공기업들은 이러한 현상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생산직종 근무자가 많은 기업들은 일부러 여성을 채용하는 것이 또다른 역차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기업들은 법적으로 여성을 쓸 수 없는 직종에서만 채용을 진행한 경우도 있었다.
가스공사는 "우리는 설계회사라서 기술직 채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이번에 공개된 수치는 올해 진행한 고졸전형의 노동직이고, 근무 중인 사무직은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고 설명했다.
석탄공사는 "최근 몇년 째 법적으로 여성 채용이 금지된 채탄부 채용만 진행했다"며 "여성 비율을 높여야 하지만 업종 특성상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조폐공사도 "우리 회사의 대부분이 생산직이라 상대적으로 여성의 비율이 낮은 것 같다"며 "하지만 양성평등목표제를 준수하며 여성 채용 비율을 높이려 노력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성단체는 낮은 여성 채용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바로 여성 차별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김근옥 상임대표는 "생산직이라서 여성의 비율이 낮다는 주장은 곧 여성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성차별적인 인식이다"며 공기업들의 주장을 비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여성 채용 비율이 40%가 넘는 기업들이 있다는 사실은 여성 채용 비율이 낮은 공기업들의 주장이 변명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며 "공기업이 모범이 돼야 국내 기업들의 성차별 인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 최근 서울 강남구 SETEC에서 열린 '2015 공공기관 채용정보박람회'에는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이 모였으며 상당수가 여자였다. 연합뉴스 제공
■ 유리천장 깨질까
공기업의 '유리 천장'(여성 등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된 사안이지만 해결의 기미는 거의 없다. 30개 공기업 임원 148명 중 여성은 한국광물자원공사 홍표근 상임감사위원과 한국철도공사 최연혜 사장 2명 뿐으로 나타났다.
5급에서 7급까지 사원급 여직원 비중은 평균 21.3%였다. 그런데 3급에서 4급, 과장급은 9.7%로 그 절반으로 떨어졌으며 1급에서 2급, 부장급은 거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1.2%로 줄었다.
여수광양항만공사,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해양환경관리공단, 인천항만공사, 울산항만공사 한국조폐공사 등은 부장급 여성 직원이 전무했다. 한국마사회, 주택도시보증공사,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등 여성 채용비율이 높았던 곳도 마찬가지였다. 그밖에 기업들도 부장급 여성이 2%를 넘지 못했다.
한국관광공사(9.7%), 부산항만공사(6.1%), 대한석탄공사(5.2%)만이 상대적으로 여성 부장 비율이 높은 공기업이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자 국회는 최근 공기업 임원 중 30% 이상을 여성에 할당해야 한다는 법안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 2013년 처음 제안된 이 법안은 한동안 계류되어 있다가 지난 9일 상정되었다. 이어 16일, 20일, 27일, 30일에 축조심사를 거쳤다.
이에 대해 공기업 관계자들은 난감함을 표했다. 고위 직급을 가진 여성도 많지 않은데 임원의 여성비율이 생기면 역차별적인 초특급 승진이나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종전보다 더 여성 비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 보겠다"며 "하지만 갑자기 여성 임원을 늘리라고 한다면 난감한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김재웅 기자 jukoas@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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