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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배척 미국, 70년 전 ‘코레마츠 격리’ 망령 되살아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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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배척 미국, 70년 전 ‘코레마츠 격리’ 망령 되살아나나

입력
2015.12.0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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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곳의 일본계 미국인 강제 수용소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캘리포니아주 시에레 네바다의 만자나르 수용소의 1942년 7월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10곳의 일본계 미국인 강제 수용소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캘리포니아주 시에레 네바다의 만자나르 수용소의 1942년 7월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시리아 난민 1만명 수용 정책에 반대하는 주지사들의 저항이 거세다. 미 50개 주 중 31개 주의 주지사가 반대를 표명했다. 2011년 내전 이후 발생한 420만 시리아 난민 중 미국이 수용한 인원은 2,290명, 전체의 0.0005%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 정치인들은 프랑스 파리 테러를 앞세워 ‘시리아 난민들 속에 숨어 들어올’ 테러리스트들의 위험을 강조하고, 법을 무시한 강제 조치까지도 불사해야 한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테네시주 글렌 카사다 의원은 주 방위군이 모든 시리아 난민들을 “잡아넣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미주리주 마이크 문 하원의원은 난민 정착을 중단하고 ‘미주리의 잠재적인 이슬람화를 막기 위해’ 국회에 특별 본회의를 요구했다. 로드아일랜드주 일레인 모건 상원의원은 유권자에게 “나는 모든 비 무슬림들을 공격하기 위해 무슬림 국가들이 그들의 사람을 퍼뜨리는 것이 주요 계획이라고 생각한다”며 “만약 우리가 이러한 사람들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을 우리에게서 분리하도록 난민 캠프를 세워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유권자들에게 보냈다.

급기야 미국 역사의 오점으로 꼽히는 70여년 전 민간인 격리 조치를 되살리자는 시장도 나타났다. 버지니아주 로어노크의 데이비드 바우어스 시장은 이 지역의 시리아 난민 지원을 중단하고 시리아 난민에 대한 집단 수용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달 18일 내 놓은 성명에서 시리아 난민 수용 거부 입장을 표명하며 그 근거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직후 11만명 이상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수용소에 격리시켰던 조치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진주만 피습 직후 일본계 미국인들을 격리시켜야 할 압박감을 느꼈던 것이 떠오른다”며 “지금 미국이 이슬람국가(IS)로부터 받고 있는 위협은 당시 일본으로부터 받았던 것만큼 실제적이고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에 일본계 3세인 마이크 혼다 민주당 의원이 “일본계 미국인 강제 격리 조치는 우리 민주주의의 흉측한 얼굴”이라며 “미래의 배타적 정책을 정당화하는데 쓰여서는 안된다”고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등 과거 일본계 미국인 강제 격리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법원마저 손들어준 인종 배척 정책

'토파즈'로 알려진 유타 주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소의 내부. 출처 J. 윌라드 메리어트 도서관, 유타 대학
'토파즈'로 알려진 유타 주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소의 내부. 출처 J. 윌라드 메리어트 도서관, 유타 대학

1941년 12월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 이후 루스벨트 대통령은 당시 태평양 연안에 거주하던 11만여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네바다주 등의 사막으로 강제 수용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대상자 중 3분의 2에 달하는 7만여명이 미국에서 출생한 미국시민이었다. 당시 정부는 강제 수용의 이유로 일본계 미국인들이 적국인 일본의 스파이 노릇을 하는 등 미국에 대한 충성심에 의심이 간다는 것을 들었는데, 같은 적국이었던 독일과 이탈리아계 미국인에 대해서는 강제수용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이 명령으로 하루아침에 집과 직장을 잃은 일본계 미국인들은 최소한의 소지품이 든 가방만 들고 황량한 사막과 황무지로 향해야 했다.

이 강제 격리가 특히 미국 사법 역사의 뼈아픈 오점으로 기록되는 것은, 대법원마저 이를 정당화시켜줬기 때문이었다.

격리 조치에 응하지 않고 도주했다가 체포됐던 일본계 미국인 프레드 코레마츠는 인권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과 함께 법원에 제소했으나 대법원은 6대 3의 판결로 강제 수용 조치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은 연방정부의 강제 이주 명령이 국가 안전의 유지에 절실히 필요한 조치로서 ‘엄격성 기준’을 충족했으므로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반대한 3명의 대법관 중 프랭크 머피는 “이 나라 역사에서 헌법적 권리의 가장 광범위하고도 완전한 박탈 중 하나”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반대 의견에서 ‘강제 이주를 주동한 사람들의 주요 근거들은 일본계 미국인들의 집단 특성과 침공, 방해 및 스파이의 위험성 사이의 합리적인 관계를 증명하지 못하며, 대신에 이러한 근거들은 인종적, 경제적 편견과 강제 이주를 앞장서서 주장한 사람들이 수년간 걸쳐 쌓아 온 일본계 미국인들에 대한 왜곡된 정보, 불완전한 사실, 추측이 상당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 강제 격리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 시행된 것이 아니며 당시 대중의 공포를 진정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사실은 강제 이주를 감독한 연방 기관인 전쟁 재배치기관(War Relocation Authority)의 군사 문서가 기밀에서 해제된 후 명백하게 드러났다.

내부 보고서에서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격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감시나 혹은 파괴에 대한 우려와는 거의 관계가 없었고, 태평양 연안의 악화되는 상황에서 ‘대중적인 의욕’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밝혔다. 또 보고서는 ‘비록 태평양 연안의 일본계 미국인 대부분이 관할 기관에 충성하고 있으나, 일본군이 침략을 시도한다면 이들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계 미국인들이 방어에 충성스럽게 협조할까? 혹은 수년간 차별로 고통 받아온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이들 일부가 공격 세력에 도움을 주지 않을까?’라며 오로지 편견에 기댄 추측에 의존해 정책이 시행됐음을 보여준다.

일본계 미국인을 외면했던 미국의 ‘자유와 정의’

하루아침에 황무지의 강제수용소로 이주해야 했던 일본계 미국인들은 집과 직장을 잃으면서 지역 사회에서 뿌리 채 뽑혀나갔다. 동양계 미국인으로는 선구적으로 미 유명 SF TV 시리즈 ‘스타트렉’의 히카루 술루 역을 맡았던 일본계 미국인 조지 타케이도 강제수용소에서 생활했다.

그는 지난해 라디오 프로그램인 ‘데모크라시 나우’와의 인터뷰에서 5세에 불과했던 그가 수용소에서 있었던 시절을 회상했다. 타케이는 “나는 학교에서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라는 구절을 외우면서 건물 창 밖에 철조망 울타리와 보초 타워를 볼 수 있었다, 죄 없는 아이는 이 아이러니를 당시에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전쟁과 아무 관련이 없었고 진주만 폭격을 당한 사람들처럼 그 일은 갑자기 벌어졌다, 우리의 사법제도의 근본 기둥인 기소와 재판 적법절차 없이 우리가 주로 거주했던 태평양 연안의 모든 일본계 미국인들은 10곳의 철조망 울타리가 쳐진 검은 타르가 발라진 막사 수용소에 강제 수용됐다, 그곳은 보초타워가 있고 기관총이 우리를 겨누는 진짜 감옥 수용소였고, 이 나라에서 가장 황량한 곳의 일부에 있었다”고 말했다.

UC 어빈 법과대학의 어원 체머린스키 교수는 일본계 미국인의 강제 격리 결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역사상 최악의 판결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그는 2011년 코레마츠 소송에 대한 분석에서 “11만명의 사람들을 그들의 인종 하나 때문에 정부가 강제로 수감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다”고 개탄했다. 체머린스키 교수는 코레마츠 소송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미국 역사에서 정부가 인종적 편견에 휩싸여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전쟁이 끝나고 미 정부는 일본계 미국인 억류 정책을 폐기했다. 1971년 의회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일본계 미국인 격리와 같은 정책을 대통령이 시행하는 것을 막는 비구금법을 통과시켰다. 1988년 시민자유법은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전쟁 기간 동안 잃어버린 재산과 소지품에 대한 배상금으로 일인당 2만달러를 지불토록 했다.

정부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2011년 닐 카트얄 법무차관 권한대행이 과거 법무부가 강제 억류 정책을 옹호한 것이 ‘실수’였다고 밝힌 것. 그는 수십년 전 자신의 전임자가 일본계 미국인 가운데 극소수만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당시 미 해군 정보 당국의 보고를 무시한 채 억류 정책을 옹호했다고 말했다. 카트얄 권한대행은 이어 이 같은 역사적 과오는 오늘날 법무부가 “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 공평무사한 태도로 정부를 대표해야 할 의무와 막대한 책임감을 상기시켜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리아 난민 배척 움직임에 반면교사 삼아야

정부는 잘못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결국 강제억류를 합법화했던 판결을 뒤집지 못했다. 하지만 대법관 루스베이더 긴스버그는 1988년 “코레마츠 타입의 격리는 다시는 살아나지 않을 것이다”고 선언했으며 대법관 안토닌 스칼리아 역시 지난해 연설에서 코레마츠 판결은 명백하게 “틀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스칼리아 대법관은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만약 당신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에게 농담을 하는 것”이라며 “전쟁의 시대에 법은 침묵한다”는 라틴어 구절을 인용했다.

배우 타케이는 지난달 13일 파리 테러가 발생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70여년전 일본계 미국인에게 쏟아졌던 적대감을 상기하며 “단지 평화로운 일본계 미국인들이 진주만 공습 이후 적으로 비춰졌던 것처럼, 이번 공격 후 이민자들과 난민들이 공격을 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적처럼 보여질 것이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바로 이런 충동은 오늘 저녁 자행된 폭력과 광기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인종을 구별하고 타인을 비인간화하려는 충동에 저항해야 한다”고 썼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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