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 호혜적 이기주의가 가능할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호혜적 이기주의가 가능할까

입력
2015.12.02 11:32
0 0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별하는 잣대 중 하나가 집단 간 교역이다. 문화인류학자들과 진화동물학자들에 따르면 집단 내 노동분업에 의한 공동생활은 인간과 동물에서 다같이 발견되지만, 집단 간 교역은 인간에서만 발견된다. 그것은 인간 유전자에 이타적 본능이 작동한다는 가정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박근혜정부의 남은 기간 동안 남북관계를 가늠할 시간이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다. 지난 11월 26일 남북이 판문점에서 가진 ‘당국회담 실무접촉’에 따라 오는 11일 개성에서 ‘차관급 당국회담’을 갖기로 했다. 이 회담의 성사 여부와 합의 내용에 따라 남북은 관계 정상화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더 깊은 대립의 터널로 들어갈 수도 있다. 오는 차관급회담은 지난 8ㆍ25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의 후속 회담 성격이 강하다. 그렇지만 차관급 회담은 날짜와 장소만 정해졌을 뿐 의제와 수석대표의 격이 정해지지 않아 염려가 없지 않다.

2012~13년 남북에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주도권 다툼이 계속돼 대화조차 쉽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 남북은 장관급 회담의 기회를 가졌으나 우리 정부가 회담 대표의 격을 따지면서 불발됐다. 2014년 10월 4일에는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등 북한 실세 3인방이 아시안 게임 폐막식 참가 차 인천을 방문했지만 당국간 회담 없이 되돌아갔다. ‘분단 70년’이 된다는 올해 들어서도 8ㆍ15 남북공동행사가 성사되지 않고 8ㆍ15를 지나면서까지 대결과 충돌이 이어졌다.

다행히 남북 고위 당국자 네 명이 8월 22~24일 장시간 마라톤 협의 끝에 당국자 회담, 긴장 완화, 이산가족 상봉 등 6개항에 합의했다. 이런 식으로 상호 대결과 충돌을 거친 후에 대화가 열린다면 실질적인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을까?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그 이행이 순조로울까 의심스럽다. 개성 회담을 기대하면서도 걱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0년 6ㆍ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시작된 남북장관급회담은 2007년 초여름부터 열리지 않고 있다.

그간 남북은 상호 신뢰 구축과 긴장 완화 방안에 관해 각기 다른 입장을 보여 왔다. 남한은 경제적, 인적 교류 등 가능한 분야부터 시작해 정치군사적 신뢰를 만들어가자는 점진적 태도를 보였다. 그에 비해 북한은 정치군사적 신뢰 없는 경제ㆍ문화 교류는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평행선 같은 두 입장은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월 6ㆍ15 공동선언, 2007년 10월 남북정상선언 등으로 타협과 절충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 들어 남북 합의를 부정하고 북한이 일련의 도발을 감행하면서 합의 이행이 중단되었다.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별 짓는 집단 간 교역은 문명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본능에 가깝다는 것이 관련 학계의 주장이다. 교역은 근대의 발명품이 아니라 선사시대부터 인류 생활에서 확인된다. 비교 우위에 입각한 상호 거래로 상생하는 이점 때문에 인류가 등장하면서부터 교역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북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원하고 남이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원한다면 이 둘을 묶어 개성 회담에서 합의할 일이다. 폴 사무엘슨은 현대 사회과학의 모든 영역에 걸쳐 가장 중요한 명제는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라고 말했다. 남북이 각각 비교우위에 있는 영역을 내걸고 상대의 비교우위를 인정하는 호혜적 이기주의가 남북관계에 요청되는 시점이다.

물론 교역의 이점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론은 남북한과 같이 전쟁을 치르고 아직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깊은 불신 관계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근본적 불신과 군사적 긴장에 놓인 관계에서 교역만으로는 관계 전환이 힘들다. 그렇지만 포괄적 신뢰 구축과 평화 정착은 우리가 통일까지 안고 갈 숙명 같은 과제다. 이것도 가능한 합의를 실천하며 쌓아갈 호혜적 이기주의의 바탕 위에 추진해갈 일이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