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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라익스아카데미 "아티스트들이여 예술만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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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라익스아카데미 "아티스트들이여 예술만 하시라"

입력
2015.12.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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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에서 머무는 중에 그린 류노아의 유화 '커뮤니케이션'. 네덜란드의 풍경에서 영감을 얻었다. 라익스아카데미 제공
네덜란드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에서 머무는 중에 그린 류노아의 유화 '커뮤니케이션'. 네덜란드의 풍경에서 영감을 얻었다. 라익스아카데미 제공

화가 류노아(31)는 올해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제 레지던시(작가에게 거주하며 작업실을 제공하는 프로그램) 라익스아카데미에 왔다. 동양화를 전공한 뒤 2010년 유화로 방향을 튼 그는 “유학 경험이 전무했기에 네덜란드에서 머무는 것 자체가 작업에 큰 자극이 됐다”고 했다. “라익스아카데미에 조언가(어드바이저)로 오는 작가들이 제 작품을 보고 그림 그리는 것보다 풍경을 보러 다니라고 하더군요. 지금은 제 작품에 네덜란드의 풍경이 많이 반영된 건 그 때문입니다.” 그의 최근작 ‘커뮤니케이션’이 묘사하는 흐린 하늘과 대지의 지평선은 확실히 한국에서 보기 힘든 풍광이다. 자연스레 작품 주제도 달라졌다. “한국에선 사람들의 관계를 주로 묘사했는데 네덜란드에서 이방인이 된 이후로는 고독감과 사람들 사이의 경계선을 묘사하는 작품을 그리고 있습니다.”

류노아와 김영은(35) 김지선(30) 등 한국 작가 3명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네덜란드 미술계의 핵심인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에 참여하고 있다. 옛 기병대 막사에 자리잡은 라익스아카데미는 목재ㆍ금속ㆍ도자기와 회화를 다루는 공방, 미술작가를 위한 작업실, 전세계에서 모은 미술자료 도서관과 사무공간 등 최고의 시설을 제공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세계의 유명 작가들이 조언가로 참여해 레지던시 작가들과 작품에 대해 활발히 토론하며 영감과 다른 시야를 준다는 점이다. 네덜란드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모인 작가들이 여기서 어울려 다양한 미술을 개척하고 있다.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 정도인 여느 레지던시와 달리 2년이나 되는 긴 기간 동안 생계 등에 대한 압박 없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다는 점은 라익스아카데미의 첫번째 장점이다. 레지던시 작가들은 연간 1만2,200유로의 생활비와 1,500유로의 작업비, 작업실과 숙소를 지원받는다. 한국 작가의 경우 이 비용은 라익스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동 부담하고 있다.

김지선의 '다음 신의 클라이막스'는 특이한 게임 플레이로 유명한 게이머들을 인류학자들의 '참여관찰' 방식을 본따 인터뷰하면서 게임과 닮은 세상에 저항하는 방법을 탐색하는 영상이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김지선의 '다음 신의 클라이막스'는 특이한 게임 플레이로 유명한 게이머들을 인류학자들의 '참여관찰' 방식을 본따 인터뷰하면서 게임과 닮은 세상에 저항하는 방법을 탐색하는 영상이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김지선은 “라익스아카데미에서 머무는 2년 동안 생계나 생활에 대한 고민을 덜었다”며 “작업 자체에 몰두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과거 그는 주로 단발적인 퍼포먼스 작업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레지던시 2년의 여유를 활용해 전시장에서 상영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었다.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이기는 것과는 무관하게 엉뚱한 목적을 설정해 ‘잉여력(쓸모없는 노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이들이 실제 게임하는 장면을 이어붙인 ‘다음 신의 클라이막스’다. 게임 ‘그랜드 테프트 오토 5’에서 기상천외한 자살 방법을 보여주는 유튜브 스타 ‘울산큰고래’와 게임 ‘마인크래프트’에서 25년 동안 세상의 끝으로 걸어가려 시도하는 커트 맥이 소개된다. 김지선은 이들을 관찰하며 현실 세계에서도 사회의 지배적 목표에서 탈주함으로써 질서에 저항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의 개관 페스티벌에서 상영됐다.

김영은의 '후광 컴포지션'은 가짜 건축물을 설치하고 그 안에서 들리는 소음의 정체를 상상하는 작품이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김영은의 '후광 컴포지션'은 가짜 건축물을 설치하고 그 안에서 들리는 소음의 정체를 상상하는 작품이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한국에서는 특정 공간에 맞춰 소리 설치 작업을 했던 김영은은 라익스아카데미에서의 실험을 통해 소리를 위한 전시공간을 직접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았다. ‘후광 컴포지션’이라는 작품은 마이클 잭슨이나 존 레논처럼 유명한 팝 가수의 노래에서 숨소리나 추임새만 추출해 들려준다. 하지만 가짜 벽지ㆍ기둥ㆍ커튼ㆍ문짝 등을 설치해 스피커를 은폐하고 관객이 소리의 정체를 추측하게 한다. 그가 2년간 네덜란드에서 제작한 작품들 중 ‘주물 2중창’은 서울 황학동 케이크갤러리에서, ‘후광 컴포지션’은 청담동 하이트콜렉션에서 한국 관객을 만났다. 네덜란드왕립음악원을 졸업한 경력 때문에 네덜란드 연고 작가로 분류돼 참여한 김영은은 “레지던시를 통해 네덜란드 안팎의 다양한 미술작가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에 참가 중인 김영은(왼쪽부터) 류노아 김지선 작가가 28일 라익스 내 자료실에 모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에 참가 중인 김영은(왼쪽부터) 류노아 김지선 작가가 28일 라익스 내 자료실에 모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라익스아카데미는 본래 피트 몬드리안ㆍ카렐 아펠 등 유명 작가를 배출한 미술학원이었지만 1980년대부터 레지던시로 전환하면서 해외 작가들을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1,000명 이상의 라익스 출신 작가들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오데크 라익스아카데미 디렉터는 “레지던시는 미술관 전시나 화랑 판매를 목표로 하는 그룹이 아니라 철저히 미술작가 개인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며 “작가들은 원래 자신의 분야가 아니더라도 원하는 대로 공방을 사용할 수 있고, 의견을 듣고 싶은 작가나 미술 전문가가 있다면 최대한 초청해 만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2004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에 참여한 작가는 13명이다. 뉴욕을 무대로 활동 중인 김성환이 지난해 아트선재센터에서 연 개인전 ‘늘 거울 생활’은 미술계의 극찬을 받았다. 함양아는 2008년 에르메스미술상과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였다. 송상희ㆍ배고은ㆍ안지산은 라익스를 나온 후에도 꾸준히 네덜란드의 전시에 참여하고 있다. 라익스아카데미가 한국 작가의 유럽 진출의 교두보가 된 셈이다. 서울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은 내년 3월 참여작가들의 작업을 모아 연합 전시를 열 계획이다.

암스테르담=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옛 기병대 막사에 자리잡은 라익스아카데미의 전경과 전면부 모습(왼쪽 아래). 1870년 네덜란드 국왕 빌렘 3세가 설립한 이 국립기관은 원래 미술학원이었지만 1980년대 들어 레지던시로 형태를 바꾸면서 학생 대신 작가들을 불러모았다. 라익스아카데미 제공
옛 기병대 막사에 자리잡은 라익스아카데미의 전경과 전면부 모습(왼쪽 아래). 1870년 네덜란드 국왕 빌렘 3세가 설립한 이 국립기관은 원래 미술학원이었지만 1980년대 들어 레지던시로 형태를 바꾸면서 학생 대신 작가들을 불러모았다. 라익스아카데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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