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예고를 졸업하고,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네덜란드로 유학을 갔다. 열심히 음악공부를 하는 한편 한국이 그리워 매일 한식을 해먹는 게 큰 일과였다. 마트에 가봐야 한식 재료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가장 비슷한 재료를 사서 정말 이것저것 많이 해 먹었다. 그러던 중 일본 친구, 덴마크 친구, 스웨덴 친구와 모여서 각자 그 나라 음식을 만들어 파티를 하기로 했다. 무슨 요리를 해야 될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잡채가 떠올랐다. 하지만 당면을 구할 길이 없었다. 숙주나물을 넣고 잡채처럼 만들어 봤다. 친구들이 너무 좋아했다. 지금 먹으면 이상할 것 같은데 그땐 엄청난 인기 메뉴였다.
네덜란드에서 유학 생활을 2년 정도 한 후 파리로 옮겨 음악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꾸 하얀색 조리복을 입고 요리를 배우는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시시때때로 사로잡혔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부모님 몰래 요리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나의 요리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방학 때면 한국에 들어와 유명한 요리 선생님들을 찾아가 배우고 연습했다. 너무 행복했다.
2007년 여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그 힘든 시기에 큰언니가 “우리 같이 식당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해 10월 아득한 슬픔 속에서 민스키친을 오픈했다. 오픈 초기엔 정말 손님이 많았다. 자주 오시는 분들도 많았기 때문에 메뉴를 자주 바꿔 드려야 좋아하셨다. 그런데 오픈 후 보름 정도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몰린 손님 때문에 나가던 메뉴의 재료가 다 떨어져 버렸다. ‘이를 어쩌나….’
네덜란드에서 친구들과 파티 했을 때 만들었던 숙주요리가 갑자기 생각났다. 콩나물로 바꿔 사용해도 좋을 거 같아 콩나물, 소고기, 새우, 오징어, 버섯을 넣고 내가 만든 소스를 올려 내갔더니 너무 좋아하셨다. 며칠 후에 다른 손님이 오셔서 “이 집에 아주 특별한 콩나물 요리가 있다던데…”하며 그 요리를 달라고 하셨다. 정말 기분이 너무 좋았다. 손님들이 콩나물로 어떻게 이런 음식을 만들었냐고 칭찬도 많이 해 주셨다. 몇 달이 지나니 잡지사에서도 취재를 나오고, 방송에서도 문의가 들어왔다.
요리에서 콩나물은 언제나 반찬이나 국 정도로 쓰이는 부재료였다. 하지만 콩나물을 아주 좋아했던 나는 꼭 콩나물을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었다. 메뉴명이 콩나물냉채라 그런지, 어떤 손님은 드시기도 전에 “콩나물에 금가루를 뿌렸냐”며 비싸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콩나물이지만 ‘부재료’로 소고기, 버섯, 새우, 전복 등등이 들어가는 건 생각을 안 하는 손님들도 오픈 초엔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민스키친에 콩나물냉채를 드시러 오시는 분들이 90%이상이다. ‘여기 셰프가 음악을 해서 콩나물요리가 유명한가?’ 농담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만큼 나와 콩나물의 인연은 각별하다.
2011년 연희동에 2호점을 오픈했다. 그때도 모든 손님들이 콩나물냉채를 많이 좋아하셨다. 2년 전 대기업에서 하는 한식집 메뉴에 버젓이 콩나물냉채가 올라가 걸 보고 얼마나 속상하고 화가 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손님들이 “모양은 비슷하나 맛은 완전히 다르다”고 도리어 나를 위로했다. 콩나물은 나를 울고 웃게 하는 재료다. 나는 지금도 마트나 시장에 가서 콩나물을 보면 한번 더 바라보게 된다. 사실 콩나물이 없었더라면 민스키친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콩나물처럼 항상 부재료로만 쓰이던 재료를 찾아 요리를 만들고 싶다.
◆김민지 셰프는?
민스키친의 오너셰프로,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과 궁중음식연구원을 수료했다. ‘사계절 한식코스요리’와 ‘김민지 셰프의 코리안 아이콘을 찾아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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