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랐다. KBS 2TV에서 버젓이 ‘삼시세끼’가 방영되고 있어서였다. 리모콘 작동을 잘못했나 싶어 tvN으로 채널을 돌려봤다. 그랬더니 차승원 유해진의 ‘삼시세끼-어촌편’이 당연히 방송되고 있었다. 어찌된 것일까.
‘삼시세끼’와 같은 시간대 전파를 타는 KBS2 ‘나를 돌아봐’는 지난달 20일과 27일 2주에 걸쳐 ‘삼시세끼’ 정선편을 패러디했다. 조영남과 이경규가 직접 강원 정선 옥순봉의 ‘삼시세끼’ 현장을 찾아가 촬영을 한 것이다. 이경규는 이서진 옥택연이 하던 것처럼 게스트를 위해 닭볶음탕을 만들었고, 옆에는 밍키를 연상시키듯 하얀 강아지도 보였다. 분명 웃어야 할 대목이었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웃음은커녕 안쓰럽고 처량했다.
그간 조영남 김수미 등 출연자들의 막말 논란과 함께 최민수의 폭력사태까지 ‘나를 돌아봐’의 전적은 너무도 화려하다. 폐지론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만으로 시청자들에 대한 신뢰는 바닥난 수준이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아예 ‘삼시세끼’의 정선 촬영 장소까지 대여(?)해 똑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경규가 이서진의 평상 위에서 갖가지 채소들을 썰고, 옥택연의 아궁이에 불을 지펴 요리를 완성하는 모습은 꼼수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겠다는 속셈 말이다.
요즘 KBS를 보면 방송업계에 존재하던 최소한의 상도덕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2년 전 tvN ‘꽃보다 할배’가 뜨자 김수미 이효춘 등을 내세워 ‘마마도’를 출시했던 KBS다. 프로그램 전체를 베끼기 한 적도 있으니 프로그램 내용 중 한 장면을 연출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일까.
27일 방송은 ‘삼시세끼’라는 밥상에 복면을 쓴 안영미를 내보내 MBC ‘일밤-복면가왕’을 재연했고, 안영미와 조영남이 결혼식을 거쳐 피로연까지 하며 MBC ‘우리 결혼했어요’의 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아메리카노와 까나리 액젓을 놓고는 KBS2 ‘해피선데이-1박2일’의 복불복 게임도 진행했다. 하나의 프로그램만으로는 배가 차질 않았나 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꼼수도 시청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를 돌아봐’는 2주 연속 5%대(이하 닐슨코리아)에 머물렀다. 반면 ‘삼시세끼-어촌편’은 12%대 시청률로 KBS의 2배를 넘어서버렸다.
‘나를 돌아봐’를 두고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노년의 연예인들이 보여주는 주책 퍼레이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발언은 ‘나를 돌아봐’에만 해당하는 평은 아닌 것 같다. KBS가 이제 주책을 그만 부리고 자존심을 지키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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