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영상작가 켄트리지, 목탄 드로잉이 서정적인 영상으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영상작가 켄트리지, 목탄 드로잉이 서정적인 영상으로

입력
2015.12.01 20:00
0 0

윌리엄 켄트리지, 거친 목탄 그림이 서정적인 영상으로

목탄 드로잉,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미술작가 윌리엄 켄트리지는 "드로잉이야말로 내 작품의 핵심이자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목탄 드로잉,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미술작가 윌리엄 켄트리지는 "드로잉이야말로 내 작품의 핵심이자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목탄으로 그린 영상 속, 머리 벗겨진 중년 남자가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의 마음속 풍경에서 거대한 송전탑이 무너지고 대지는 쪼개진다.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들여다본 남자의 뇌도 서서히 쪼그라든다. 영상의 주인공은 ‘소호 엑스타인’이라는 가상의 백인 부동산사업가다. 아파르트헤이드(흑인 차별 정책)를 등에 업고 쌓아올린 그의 부는 가족이 붕괴되면서 무의미해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영상작가 윌리엄 켄트리지의 대규모 회고전 ‘주변적 고찰’에 나온 ‘소호 엑스타인’ 연작은 그의 대표적인 목탄 드로잉 애니메이션 중 하나다. 1955년 태어난 때부터 요하네스버그에서 살아온 켄트리지는 “남아프리카의 부조리한 일상 풍경을 그려내다 보니 자연스레 내 작품이 정치적이 됐다”고 말했다. ‘소호 엑스타인’을 통해 그는 도덕적 사유 없이 쌓아 올린 부의 끝에서 맞닥뜨린 허망함을 표현하고 있다.

초창기 켄트리지는 목탄 그림을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면서 매 장면을 촬영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목탄 드로잉을 고수하는 이유는 “생각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목탄을 그린 후 수정하고 싶은 부분만 지우고 닦아내면 깨끗해집니다. 목탄이란 우리네 삶의 불확실성과 임시성을 잘 표현해주는 매체가 아닌가 합니다.”

목탄으로 시작해 영상에 관심을 두었던 켄트리지는 2000년대 들어 초대형 다채널 영상과 설치미술로 관심을 확대했다. 2005년작 ‘블랙박스’는 1904~1907년 독일령 나미비아에서 일어난 헤레로 대학살 사건을 기계인형이 움직이는 극장으로 비유해 표현한 작품이다. 2012년 카셀도큐멘타에서 처음 선보인 ‘시간의 거부’는 설치미술과 영상이 결합된 작품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2전시실 한 방을 통째로 차지했다. 전시장 중앙에 놓인 아코디언 모양의 기계 코끼리를 중심으로, 다섯 벽에 걸쳐 여러 가지 물건을 든 사람 그림자들이 행진을 벌이는 장관이 펼쳐진다.

어두운 시대를 그리지만 켄트리지의 작품은 오히려 서정적이다. 동료 작곡가 필립 밀러의 클래식과 남아프리카 전통 민요를 조합한 음악이 차분한 분위기를 만든다. 영상 속에서는 대지와 수풀이 움직이고, 무용수가 춤을 추고, 그 배경에 영어사전에 수록된 단어와 뜻풀이가 읽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지나간다. 작품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지만 켄트리지는 “의미가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사람의 뇌 속에는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 혼돈스런 면을 그대로 꺼내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느껴주시면 좋겠어요.” 2016년 3월 27일까지. (02)3701-9500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