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에게 지원해 준 군수물품 대다수가 중고품이거나 90년대 이전에 폐기되었어야 할 사실상 ‘쓰레기’에 가까운 것들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친 러시아 반군과 내전 상태인 우크라이나 정부군을 돕기 위해 미국은 지난 수년간 2억6,000만 달러 상당의 비 살상용 군수물품을 보내왔는데, 그 대부분이 시대에 뒤떨어져 쓸모 없는 것들이라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사기를 오히려 저하시키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3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동부 우크라이나 전선에 주둔하는 무기 정비업자들과 정부군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친러 반군이 점령하고 있는 도네츠크 외곽에 주둔 중인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1980년대에 생산된 다목적 차량 ‘험비’를 작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 험비 가운데 3대는 도어가 플라스틱 재질이며 창에는 방탄장비가 부착돼 있지 않다. 미국 정부가 공급한 이들 험비는 1984년 처음 생산된 모델로 최근 자국 부대에선 퇴역시키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한 관계자는 “이들 차량은 우크라이나에 보내지기 전 너무 오래도록 창고에 방치되어 있어 수백 킬로미터도 달리지 않았는데 고장이 나 못쓰게 될 정도”라고 말했다.
또 보병 부대가 최근 미 국방부로부터 받은 방탄조끼 120개는 홑겹으로 미군은 이미 2000년대 중반 이전에 전투현장에서 사용을 금지한 제품이다. 우크라이나 특수부대의 한 장교는 “미군이 계속 보급품을 보내줄 생각이라면, 중고품은 리스트에서 빼주길 부탁한다”라고 WP에 말했다.
전투를 돕기는커녕 자칫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이들 보급품이 첨단 러시아산 군수품으로 무장한 반군과 맞서야 하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사기와 미국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최근 수 주 동안 반군과의 전투 중 하루도 빠짐 없이 정부군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하루에 5명이 전사하기도 했다. 미국의 어설픈 보급정책으로 인해 친러 우크라이나 반군이 손쉽게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미 정부는 “빠른 보급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라는 반응이다. 미 국방부 관리는 “러시아가 이토록 깊숙하게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할 것이란 예상을 하지 않았고, 군수품을 대규모로 보급할 계획도 없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신속히 군수품을 보내기 위해 완벽하지 못한 물품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문제의 험비의 경우는 실제 작전 투입용이 아니라 다른 차량의 부품 공급용으로 보내진 경우도 적지 않다고 WP는 덧붙였다. 미 정부 관계자는 “운전을 하기에 적절치 않지만 분해해서 부품으로 나눠 사용하면 정부군에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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