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초대 대변인을 지낸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 원장의 조용한 퇴임식이 뒷말을 낳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30일 오전 서울 은평구 소재 양평원에서 조용히 퇴임식을 치렀습니다. 기관장의 시시콜콜한 동정까지 보도자료로 내는 여성부는 임기가 1년이나 남은 김 원장의 퇴임 소식을 어떤 연유인지 출입기자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기자가 김행 원장의 퇴임 소식을 안 것은 다른 매체의 보도를 통해서였습니다. 여성부는 김 원장의 사퇴를 알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산하기관의 일이라 해당기관이 판단할 일”이라고 양평원에 떠넘겼고, 양평원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만 답했습니다.
김 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에서 인생의 마지막 봉사 기회를 찾게 돼 영광이다. 이 지역의 발전을 위해 힘든 결정을 했다”고 퇴임사를 했다고 합니다. 내년 4월 총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지요. 국회의원 출마야 개인의 자유이지만, 지난해 2월 ‘낙하산’논란 끝에 취임한데다 임기 절반도 채우지 않은 상황이라 그의 사퇴는 씁쓸함을 남겼습니다. 공공기관의 장은 전문성을 갖춘 이가 임기 동안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에 매진해도 부족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김행 원장뿐 아닙니다. 지난달 초에는 현 정부 정무비서관을 지낸 김선동 여성부 산하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장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상황에서 사퇴한 점, 18대 국회의원 출신으로 취임 때부터 낙하산 논란이 있었던 것은 김행 전 원장의 사례와 빼다 박은 듯합니다. 현역 의원인 김희정 여가부 장관도 지난 7월 “내년 총선 당연히 출마한다”며 삼선 도전을 공식화 했습니다.
선거가 목전에 닥치면 정부 부처에서는 부처나 산하기관 장의 관심이 선거로 향해 있어 사실상 업무에서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왕왕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여성부의 경우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5개 산하기관 중 2개 기관의 장이 출마를 위해 사퇴를 했고, 장관까지 포함하면 부처와 산하기관장 절반이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있는 셈입니다.
여성, 가족, 청소년, 양성평등, 일ㆍ가정 양립 등 날이 갈수록 여성부 업무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는데, 관련 기관장들이 여의도만 바라보고 있다면 과연 부처의 업무는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런 일이 반복돼 여성부와 산하기관의 기관장 자리가 정치인들의 ‘경력관리용’이라는 인식이 굳어질 경우, 정치적으로 생색내기 좋은 정책만 나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은미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은 “공직자는 해당 업무에 전념해야 할 의무가 있는 만큼, 임명 때부터 중간에 그만둘 수 있는 정치인 출신을 배제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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