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박종민] 박인비(27ㆍKB금융그룹)는 경기 중 표정 변화가 없는 선수로 유명하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상대를 제압한다고 해 그에게는 '침묵의 암살자'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그러나 인터뷰 현장에서의 모습은 180도 달랐다. 말 한 마디로 동료들과 취재진의 표정을 바꿀 수 있는 '언변의 달인'이었다.
ING생명 챔피언스 트로피가 열린 부산에서의 3일 간 박인비의 리더십은 단연 돋보였다. 그는 대회 기간 1승1무1패의 성적을 올렸다. 기대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박인비는 자신이 속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팀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그는 주장으로서 선수 조편성 등 승부 전략을 짜는 데 깊숙이 관여했다. 싱글 매치플레이를 앞두고는 "경기 감각이 좋은 선수들을 경기 초반 우선적으로 배치했다. 라운드 초반에 승점을 딸 수 있도록 했다"며 치밀함을 보였다. 또한 그는 "8, 9조 매치에서 승부를 끝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승부욕도 나타냈다.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여자 골퍼로서 세계 최고 자리에 우뚝 선 박인비에게 잇따라 존경심을 표했다. 박인비도 그런 후배들을 아꼈다. 싱글 매치플레이에서 박인비와 대결한 KLPGA팀의 박성현(22ㆍ넵스)은 "박인비 프로님은 항상 일관된 경기력을 보여준다. 본받을 점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박인비는 "(박)성현이의 플레이가 정말 좋아 따라가기 어려웠다. 성현이한테 5홀 차로 졌다. '한국에 잘 치는 선수가 이렇게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선수들이 KLPGA 투어에 많은 것 같아 선배로서 뿌듯하고 든든하다. 후배들도 얼른 LPGA 투어에 와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후배에 대한 사랑과 한국여자골프의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같은 팀의 유소연(25ㆍ하나금융그룹)은 "박인비 언니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려 했다. LPGA팀뿐 아니라 KLPGA팀 선수들까지 모두 아울렀다. 대회 홍보대사로서 역할까지 자처했다. 좋은 주장이었다"고 치켜세웠다.
박인비는 인터뷰 때마다 특유의 유머와 넉살로 기자회견장을 들었다 놓았다. LPGA팀과 KLPGA팀의 자존심 대결로 분위기가 무거워질 만하면 박인비는 농담을 건네며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취재진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후배들이 있을 때는 자신이 나서 매끄럽게 마무리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후배들인 팀원들과 이야기하며 활짝 웃었다. 경기 중에는 승부사이지만, 평소에는 푸근한 언니였다.
박인비는 '세리 키즈'의 대표주자다. 그가 우상으로 여기는 박세리(38ㆍ하나금융그룹)는 필드에서는 냉정한 승부사이지만, 밖에서는 후배들을 아낌없이 챙겨주는 따뜻한 선배다. 한 남자 프로는 박세리와의 일화를 전하며 "필드 밖에서의 박세리는 친누나 같이 푸근하다"고 밝혔다. 박인비도 박세리의 그런 면을 닮았다. 카리스마와 온화한 리더십을 모두 보여줬다. 대회는 끝났지만, 박인비의 여운은 여전히 강렬하다.
사진=박인비(위, KLPGA 제공)-단체 사진.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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