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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영유권 주장할 수 없는 땅... 남극조약 체결

입력
2015.12.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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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12월 1일

1959년 12월 1일 남극조약이 체결됐다.pixabay.com
1959년 12월 1일 남극조약이 체결됐다.pixabay.com

지구의 거의 모든 땅(Land)은 누군가의 영토다. 국가들이 나누어 영유(領有)하며 주권이라는 배타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는 공간이다. 또 지구의 거의 모든 사람은 한 국가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아마존 밀림에서 부족으로 자족하든, 야생 툰드라에서 태어나 출생신고도 않고 자라 혼자 움막치고 살든, 국가로부터 완벽하게 숨지 않는 한 국민 되기를 거부할 권리나 자유는 없다. 무국적자가 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들은 국민 편입이 일시적으로 유예된, 미(未)국적자일 것이다.

남극은 어느 국가도 영유하지 못한 유일한 지구의 땅이다. 육지 면적의 약 9.4%(1,400만 ㎢)인 그 땅은 98%가 얼음으로 덮여 있고, 실효적 지배가 불가능해서 근대 이후 한참 동안 누구도 욕심을 내지 않은 덕이다. 남극의 가치를 막연하게나마 알게 된 20세기 이후 지정학적으로 연고가 있는 국가(영국, 프랑스, 아르헨티나, 칠레, 노르웨이, 호주, 뉴질랜드 7개국)들이 일부 공간에 대해 서로 겹쳐 영유권을 주장했을 때는, 국민 영토 주권의 3요소를 갖춘 근대국가들이 이미 완성된 뒤여서 자석의 같은 극들이 서로를 밀쳐내듯 누구도 깃발을 꽂을 수 없는 형세였다. 미국과 구소련 같은 초강대국들이 다행히 북반구에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처럼 영토 식민경쟁에 발 밭게 덤벼들지 못해 어떤 연고도 주장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 냉전 전선에 발이 묶여 뒤늦게 군침을 흘릴 수도 없었던 덕도 컸을 것이다.

2014년 2월 준공한 남극 테라노바만 장보고기지 전경. 극지연구소.
2014년 2월 준공한 남극 테라노바만 장보고기지 전경. 극지연구소.

1959년 오늘(12월 1일), 영유권을 주장하는 7개국과 이런저런 사연으로 남극을 마음을 두고 있던5개국(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벨기에, 소련, 일본)이 미국 워싱턴에 모여 ‘남극조약’을 체결했고, 61년 6월 23일 비준ㆍ발효됐다. 전문과 14개 조항으로 구성된 ‘조약’에 따르면, 누구도 영유권도 주장할 수 없고 과학 연구 등 오직 평화적 목적으로만 그 땅을 이용할 수 있다. 그로써 남극은 최초의 탈냉전 평화의 영토, 과학의 영토가 됐다. 탐사ㆍ개발 움직임을 규제하기 위한 조약(88년), 동식물 등 환경자원을 보존하기 위한 조약(91년) 등 규제가 잇따랐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남극에는 2009년 현재 29개국 상주 연구소가 ‘지구촌’을 이루고 있다. 지구 유일의 탈국가ㆍ비영토에서 각 국가를 대표하는 국민(과학자)들이 작은 국가 출장소를 두고 365일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1986년 남극조약에 가입한 한국도 세종기지(남극권ㆍ88년)와 장보고기지(대륙내ㆍ2014년)를 세웠다.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 장면. 극지연구소.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 장면. 극지연구소.

물론 거기도 ‘국가’는 있다. 남극의 국가, 즉 남극 관련 조약들을 운영하며 주요 안건을 협의ㆍ결정하는 주체는 남극조약협의당사국(ATCPㆍ원조약국+ 상설연구소 운영국)이다. 유엔과 별도로 일종의 장기적인, 지구연방 민주주의 정치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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