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 어감과 소리를. ‘국가’와 같은 뜻이지만, ‘국가’는 왠지 뻑뻑하고 답답하다. 법적인 통제나 국경의 한계가 선명해 감옥 같다. 권위주의의 망령이 어슬렁대는 요즘 대한민국은 사랑스러운 ‘나라’보다 규율과 일방적 원칙을 강요하는 ‘국가’의 전횡이 극에 달해있다. 정치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소박하지만 절실한 바람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중학생 시절 봤던 허영만의 만화 ‘카멜레온의 시’엔 ‘나라’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스스로를 초극해 자기만의 사랑을 영원 속에 살아있게 하는, 현실에선 쉽게 보기 힘든 인물이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라’가 사무쳤던 건. 고국이 그리워도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은 ‘조국’과 비슷한 의미로 ‘나라’를 가슴에 묻은 채 살다 죽을 것이다. 자기만의 ‘나라’는 꼭 지도 속의 국가만은 아니다. 영혼을 서로 비춰보고 존재만으로도 서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어떤 이의 ‘나라’가 될 수 있다. 거창하거나 남다를 필요 따위 없다. 그를 그리고 그에게만 바치고 싶은 열정이 있다면, 그는 한 사람의 영원한 ‘나라’이다. 살면서 그런 ‘나라’를 만나게 되면 스스로를 바꾸고 싶어진다. 어릴 적 본 만화의 그 ‘나라’처럼 자신 안의 ‘진짜 나’를 마주보게 되는 것이다. ‘나라’. 입에 담으면 날아갈 것 같지 않은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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