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단맛에 길들여져 해야 할 일 등한시” 표절 사태 이후 첫 사과
소설가 신경숙씨의 남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표절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현대시학’ 12월호의 권두시론으로 쓴 ‘표절의 제국-회상, 혹은 표절과 문학권력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에서 남 교수는 “이 자리를 빌려, 늦었지만, 다시 한 번, 주요 문학매체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아온 사람의 하나로서, 주위의 모든 분들께, 그들의 기대만큼 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 드리고자 한다”며 “신경숙을 비롯해서 여러 작가들의 표절 혐의에 대해 무시하거나 안이하게 대처한 것은, 해당 작가를 위해서나 한국문학을 위해서나 전혀 적절한 대응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남 교수는 앞서 다른 문예지에 게재한 글에서는 신씨를 옹호하는 듯한 자세를 취해 논란을 부추겼다. ‘현대시학’ 11월호에서 그는 “문학사에서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는 시간의 비가역성을 거슬러 뒤에 온 작가가 먼저 온 작가를 창조한다는 점”이라며 문학사에서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경향들이 훗날 한 작가의 등장과 더불어 하나의 계보를 형성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신경숙의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베낀 게 아니라, ‘우국’이 ‘전설’을 통해 재창조됐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21세기 문학’ 겨울호에는 “무인도에서 글을 쓰지 않는 한 표절 시비가 일어날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길은 없다”며 보다 직접적으로 신씨를 옹호했다. 남 교수의 이러한 글들에 대해 1992년 이인화씨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표절 저격수로 이름을 알린 문학평론가답지 않다는 뒷말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엔 입장을 바꿔 고개를 숙였다. 남 교수는 6월 신경숙 표절 사태 당시 문학동네를 공격했던 권성우 문학평론가가 과거 이씨의 ‘내가 누구인지…’를 상찬하는 ‘주례사 비평’을 썼다며 운을 뗐다. 이어 이 소설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표절로 점철된 것인지를 30여 쪽에 걸쳐 상세하게 언급한 뒤, 사실상 이로 인해 계간 문학동네가 출범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인화의 표절 사태로 출범하게 된 문학동네의 원년 멤버들이 또 다른 표절 논란으로 편집위원에서 물러나게 된 현상은 삶의 쓰디쓴 아이러니를 되씹게 한다”며 “나를 포함해 그 동안 한국 문학의 일선에서 주도적으로 일해온 많은 사람이 오만했던 게 틀림없다. 그들은 문학권력이라는 말을 거부했지만 실은 권력의 은밀한 단맛(잡지 편집과 심사에 관여할 때 발생하는 그 알량한 권력)에 길들여져 있었으며, 살펴야 할 일을 등한히 했고, 진작 했어야 할 일을 그냥 미뤘다”고 반성했다.
그는 “작가 개개인에게도 한국문학 전체에도 이 사안은 엄청난 시련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일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나가느냐에 한국문학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여겨질 정도”라며 “진화의 도상에 있는 한국문학에 이 사태가 재앙만이 아닌 새로운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한편 남 교수의 글에 대해 권성우 문학평론가는 “이인화씨 책에 쓴 비평은 표절 여부가 알려지기 전, 책이 출간되자마자 쓴 것”이라며 “마치 내가 표절을 알고도 덮은 것처럼 말하는 것은 다분히 악의적”이라고 반박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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