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청년은 실종된 개념이다. ‘헬조선’이나 ‘N포 세대’, ‘수저 계급론’ 따위의 섬찟한 단어들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을 뿐이다. 더욱 암담한 것은 역동적 민주주의의 상징이던 386세대가 50줄을 넘으면서 20~40대를 대변할 정치세력마저 진공상태가 돼버린 현실이다.
청년은 어쩌다 정치영역에서 극단적 소외세력이 됐을까. 지난 여름 선배 청년 세대인 86그룹의 하방(下放)과 청년 정치의 부활을 주장하며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두 30대 정치인은 또다시 86그룹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본보 100도씨 인터뷰에서 만난 조성주(38)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과 이동학(34) 새정치민주연합 전 혁신위원은 “(내년 총선에서)86그룹 선배들이 1진 역할을 하지 않고 2진 역할에 만족한다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이 전 위원은 “본판(공천 경쟁)에 들어가 선배들 엉덩이를 한 번 제대로 걷어차겠다”고까지 했다.
_청년 정치는 어쩌다 사라졌다고 보나.
(조성주) “7,80년대 청년은 문화적 코드로만 남아 있다. 청년의 사회경제적 문제는 2000년 등록금 이슈를 시작으로 생겨났고 이어 결혼과 주거를 포기한 몇포세대 등으로 번져 지금은 헬조선까지 왔다. 그런데 정작 정당은 청년 이슈를 독자적 의제로 만들지 못했고 청년을 대변하는 세력 또한 권력의 문제에만 집중했다. (86그룹을 겨냥해) 자신들의 포지션을 안에서 만들기가 굉장히 허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동학) “새정치연합은 열린우리당 이후 젊은 청년들의 유입이 끊긴 불임정당이 됐다. 과거처럼 운동권 영입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내 대학생위원회 정도에서 대학생 의제를 다루지 있긴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기본적으로 20,30대 입장에서 정치가 멋있다는 희망을 정당에서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_선배 386그룹이 제대로 역할하지 못했다는 것인가.
(이동학) “86그룹이 8,90년대 한국 사회를 바꿨던 역사가 후배로서 너무 부럽다. 우리 사회가 또 한 번 새로운 시대로 가려면 그들이 역할을 한 번 더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50대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 그런데 당에서 1진을 해도 아쉬울 판인데 선배들은 여전히 당의 2진으로 남아 있다. 단순히 선수를 늘리는 차원에 만족하지 말고 ‘제도권 정치에서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너희들 차례다’라면서 떳떳이 물려주고 뒤로 빠지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한다.”
(조성주) “새정치연합의 경우 86그룹 선배들이 국회의원이지만, 진보정당 영역에서 86그룹은 사회 및 노동운동에서의 주축 리더들이다. 정의당에선 86그룹이 중간세대로 인식되지 않고 심상정 대표나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묶여 있다. 그 아래 저를 비롯한 젊은 친구들이 있다.”
(이동학) “새정치연합에서는 86그룹이 주축으로 나가기 위해 그 아래 세대인 청년당원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2진으로 머문다면 우리 사회로서도, 당으로서도 큰 손실이다. 주축이 돼 활약을 일으켜야 하는데 여전히 뭔가에 억눌려 아무 것도 못하고 있다.”
(조성주) “86그룹의 경험과 세계관은 분명 청년들의 그것과는 차이가 많다. 권력을 둘러싼 역할 교대론이나 분점론 등이 그들의 고민이었다면 우리는 다르다. 노동이나 민주주의 실체와 분배와 성장 등을 둘러싼 내용의 충돌이 훨씬 시급하다. 진보정당 뿐아니라 새정치연합과 새누리당 내 에서도 이 논쟁을 더 활발하게 해야 한다.”
_청년 세대가 정치에 냉소적인 것도 문제 아닌가.
(조성주) “커져가는 무관심은 분명 위기상황이다. 야권이 2010년을 기점으로 청년을 정치에 동원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청년사회는 진보적ㆍ개혁적 세대라고 보고 정치동원을 한 것이다. 정치동원 이후 그렇다고 청년세대의 정치 효능감이 더 높아졌나. 절대 그렇지 않다. 동원된 사람들은 도리어 빠져나가게 된다. 300만개 일자리라는 구호로는 효능감을 높일 수 없다. 삶의 문제에서 근본적인 변화의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이동학)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청년들은 그 동안 표 찍는 기계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망을 찾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치의 실종이 책임이 크다. 소통의 단절에 청년들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
청년 정치인들은 기성 정치권이 만들어 놓은 제도에 대한 거부감도 컸다. 최근 새정치연합이 청년비례대표 후보 선출의 나이 기준을 만45세 이하로 결정한 것을 두고도 두 젊은 정치인은 문제를 제기했다.
_새정치연합 뿐아니라 새누리당도 청년 기준이 45세다.
(이동학) “열린우리당은 청년 기준이 만 39세 이하였다. 그런데 이후 20, 30대 당원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새정치연합 당원 평균 나이가 58세가 됐다. 열린우리당은 대학생 당원만 수 만명이었지만, 새정치연합은 45세 이하 당원을 합쳐야 10만명이다. 젊은 세대가 당에 매력을 느끼고 더 적극적으로 입당 원서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청년 기준을 더 낮추지 않는다면 20, 30대의 다양한 이슈가 정당 정책 우선 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조성주) “정의당은 당원 전체 평균이 42.5세라 청년의 기준을 35세로 잡고 있다. 당은 사회의 평균적 모습을 닮아야 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30세 전후에 사회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변화에 맞춰 35세를 청년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_청년들의 정치 유입 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나.
(이동학) “정당의 교육 시스템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다. 청소년기부터 교육시켜 자연스럽게 정치로 유입시키는 시스템이 없다. 어디선가 샘물이 나와야 하고, 물이 나오지 않으면 썩고 고이게 된다. 지금 당 상황이 딱 그렇다. 건강한 정치, 건강한 공동체 구현을 위해서라도 샘물 같은 청년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
(조성주) “최근 대학이 탈정치화된 것이라기 보다는 과거 한국 사회 상황 때문에 대학이 정치 과잉이 됐고, 이제 제자리 정도로 온 것이다. 유럽 정치 선진국의 경우 정당이 와서 채운다. 총학생회가 학내 정치를 리드하는 특수한 시대가 지난 만큼, 정당이 대학 내로 들어가 정치를 활성화해야 한다. 청년들이 정당에서 리더로 커 당 밖의 단체에서 경험을 쌓고, 다시 정당으로 돌아오는 시스템이 필요하고 그것이 정의당이 가진 중장기적인 비전이다.”
_기득권 중심의 현실 정치를 극복할 방안이 있나.
(이동학) “일단 당에서 청년 만의 리그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청년 당원을 위한 명확한 영역을 만들어주고, 그 안 경쟁하게 해 리더십을 키워 인재를 계속 배출하는 것이다. (청년당에) 권한을 대폭 줘 거기서 실제 청년정책 등 결과물을 당에 제출하고 당은 그걸 가지고 토론을 한 뒤 만들어진 최종 안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방식이 필요하다.”
(조성주) “정의당도 35세 미만의 청년 부대표를 따로 선출하는 등 할당제를 하고 있다. 할당은 일종의 경과규정 같은 것이라 당내에 청년들이 녹아 드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이를 위해서 제도를 새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청년들이 끊임없이 권력에 도전해야 한다.”
_상대방 당의 청년 정책에 대해 평가를 한다면.
(조성주) “최근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실업부조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일자리 몇 만개 만드는 것보다 이 제도 도입이 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새정치연합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접근하는 청년 수당 내지는 배당도 의미가 크다. 개인적으로는 규모는 더 적을지라도 대상이 명확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청년 수당이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 배당보다 더 효과적일 것으로 본다.”
(이동학) “300인 이상 사업장에 5% 청년 할당이라는 정의당 정책에 주목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대기업 일자리 창출보다 중소기업에 가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노동시장 전체의 측면에서 보면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 최근 타결된 SK하이닉스의 노사 합의다. 10%의 재원을 하청기업에 주고 하청기업 근로자들의 성과급과 월급이 올라가는 구조에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우리당에는 청년세라는 정책이 있는데 이 또한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청년 정치인은 내년 총선 도전 여부에 대해서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동학 전 위원은 “총선에 출마해 잘 못하고 있는 86선배들의 엉덩이라도 차버리고 싶다”는 말까지 거침없이 꺼냈다.
_내년 총선에 출마할 준비는 돼 있나.
(이동학) “청년 할당제가 모두 채워지지 않더라도 새로운 물을 유입하는 작업을 하겠다. 개인적으로도 역할을 피하지 않겠다. 의원 한 자리 하고 말고의 고민이 아니라 실의에 빠진 헬조선에서 희망을 조직하고 싶다. 그래서 저는 자극제가 되고 싶다. ‘도대체 뭐 하시냐’고 (86그룹) 선배들의 엉덩이를 한 번 차고 싶다.”
(조성주) “지금까지는 정당이 청년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공약했지만 내년 총선을 다를 것이다. 청년들이 나서 이제 청년들이 우리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진보정당으로서 고민이 많지만 양당 정치에 도전하는 진보정치의 선봉장을 하고 싶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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