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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스웨덴 6시간 근무제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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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스웨덴 6시간 근무제 확산

입력
2015.11.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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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선 하루 6시간 근무가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업무효율은 물론 삶의 질도 기존보다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스웨덴에선 하루 6시간 근무가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업무효율은 물론 삶의 질도 기존보다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스웨덴 중부 팔룬에서 디지털 미디어 제작 스타트업(신생기업)에 다니는 여성 에리카 엘스트롬(34)씨는 오후 3시30분이면 사무실에서 나와 자택 근처 숲으로 하이킹에 나선다. 오랜 시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규칙적이지 않은 생활을 이어온 그는 회사가 올 9월 도입한 ‘하루 6시간 근무제’ 덕에 삶의 만족도가 배로 높아졌다고 했다. 엘스트롬씨는 “아직 자녀는 없지만 환한 낮 시간을 나와 내 가족, 친구들을 위해 쓸 수 있다”며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다 보니 효율도 급격히 오른다”고 지난 2일 BBC에 말했다.

스웨덴에서 ‘하루 6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주당 50시간 이상 근무하는 근로자가 1% 남짓인 데다 연차 25일 보장, 육아휴직 480일 보장이 보편화한 스웨덴에서 이 제도가 확산하는 이유는 ‘일과 삶의 균형’을 점점 더 중시하게 된 사회분위기 때문이다. 특히 수년 전 일었던 창업 붐 때 생겨나 생존에 성공한 스타트업들이 최근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업무 시스템 마련에 나서면서 이 제도가 주목 받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타트업, 일부 기업 중심으로 시범 도입

스웨덴에서 하루 6시간 근무제는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이 제도를 시범적으로 도입했다가 비용이 늘자, 8시간 근무 체제로 복귀한 곳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당시 6시간 근무제를 도입해 16년째 이어오고 있는 키루나 광산 마을이나, 13년째 이어 온 토요타 서비스센터 등의 성공 사례가 주목 받기 시작하면서 이 제도를 다시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기업이 많아졌다.

엘스트롬씨가 근무하는 백그라운드AB의 직원들은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6시간을 일한 후 모두 퇴근한다. 대신 업무시간 사무실 내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하거나 개인적인 전화나 이메일을 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한다. 지미 닐슨 회장은 “하루 8시간 근무한다 해도 모든 시간을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며 “하지만 6시간 정도 일하면 집중도도 높아져 더 빠른 일처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닐슨 회장은 “9달 동안 이 제도를 시험 운영할 예정이며 경제적 측면에서나, 고객과 직원 만족 측면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검증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스톡홀름에 위치한 스타트업인 브래스, 필리문더스도 마찬가지다. 이들 회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 4시까지 일하는 대신 회의 횟수를 줄이고 점심시간을 30분으로 단축했다. 브래스의 마리아 브래스 최고경영자(CEO)는 “우리가 이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직원들이 가족을 우선 순위로 두고 생활하길 원하기 때문”이라면서 “제도 도입 후 직원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며 일에 대한 흥미도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CNN에 말했다. 필리문더스의 CEO 리누스 펠트는 “하루 8시간 일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2시간 정도 근무 시간을 줄이면 직원들은 퇴근 이후 삶에 대한 기대로 동기부여 된다”고 설명했다.

신생 기업들 외에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공공부문에 이 제도를 도입하는 곳도 있다. 스웨덴 제2 도시 예테보리는 지난해 4월부터 시청과 일부 병원을 대상으로 기존 7시간 근무제를 6시간으로 시범 단축했다. 당시 맷츠 필햄 예테보리 시장은 “시민들이 근로 시간 단축을 통해 덜 지루한 날들을 보내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게 생활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예테보리시는 시청 내 근무 단축을 도입한 일부 부서와 기존 8시간 근무 체제를 유지하는 부서를 1년 여간 지켜 본 뒤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일부 대학병원과 치료소에서도 같은 실험을 한다.

이 같은 스웨덴의 근로문화를 좇아 고향을 떠나 온 사례도 있다. 영국 런던의 한 은행에서 일하다 1년 전 스톡홀름 지점으로 옮긴 영국인 아믹 그레왈은 BBC에 “영국에서는 주말이나 휴일을 따지지 않고 고객들을 응대해야 했고, 그러한 환경에 좌절을 느꼈다”며 “하지만 스웨덴 근로자들 사이에는 휴일엔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루 6시간 근무제를 택하는 스웨덴 기업의 직원들은 육아와 가정생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스스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긴 노동시간=큰 성과’ 반박 잇따라

많은 국가들이 택하고 있는 ‘하루 8시간 근무제’는 헨리 포드가 1914년 미국 디트로이트 공장 노동자들에게 적용했던 시스템이 점차 확산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가 기본이었던 당시만 해도 포드의 이 같은 실험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포드가 근무 시간을 줄인 이유는 직원들이 공장 밖에서 소비자가 되어 구매력을 높일 것이라고 봤기 때문.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며 세계의 노동생산성은 두 배 넘게 늘었지만 근무 시간의 변화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최근 들어서는 근무 시간이 길면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란 통념을 깨트리는 실증적인 연구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미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존 펜시벌 교수는 지난해 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내놔 주목 받았다. 펜시벌 교수에 따르면 주당 49시간 이하로 일할 때 나타나는 성과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반면 50시간을 넘어가게 되면 오히려 성과는 줄어들게 된다. 직원들의 집중도와 의욕이 크게 떨어지는 탓이다.

라트비아 소재 소셜네트워킹 회사인 ‘드라우기엠 그룹’이 지난해 시간추적-생산성 계산 어플리케이션인 ‘데스크타임’을 통해 실험한 결과를 봐도 오랜 시간 근무가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기업은 생산성 상위 10% 직원들이 다른 직원들보다 오래 일하지 않았고, 심지어 8시간 내내 일하지도 않았다고 분석했다. 직원들은 오히려 평균 52분마다 17분씩 쉬는 시간을 가지며 집중력을 일정하게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레슬리 펄로와 제시카 포터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근로자들을 위한 최적의 근무시간을 조사해 하루 7시간 근무 사이클이 노동자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기도 했다.

스웨덴 룬드대 경영학과 로랜드 폴슨 연구원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근무 시간은 역사 속에서 점점 늘어 왔지만 이는 최선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기업인들이 ‘더 길게 일해 성과를 내야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식의 주장으로 근무 시간을 늘려 왔다”며 “생산성은 1900년대 초반에 비해 1970년을 지나며 2배에 달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4시간만 근무해도 되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일부, 불황에 근무 시간 연장 검토

스웨덴 외 유럽 국가에서도 시민단체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근무 시간 단축’을 기조로 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지난해 프랑스 경영자총연합회(경총)와 노동조합은 퇴근 후인 오후 6시부터 출근 전인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업무와 관련된 전화,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을 금지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업무 외 시간에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내 업무 압박을 주는 기업들은 고발 및 소송을 당하게 된다. 독일의 노동조합연맹(FDGB)도 근로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퇴근 후에도 상사로부터 연락을 받는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근무시간 이외 시간에 업무 관련 통화나 이메일을 금지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경제 불황을 이유로 근무 시간을 오히려 늘리려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1998년부터 주 35시간 근로제를 시행해 온 프랑스에서는 최근 이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등장하며 정치권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산업부 장관은 지난 8월 “오래 전 좌파는 기업에 대항하거나 기업 없이도 정치할 수 있으며 국민이 적게 일하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주장했다. 마크롱 장관이 주 35시간 근무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집권 사회당 내부와 노동계에서는 장관에 대한 강한 비판이 제기됐다. 올 초에는 마크롱 장관이 샹젤리제와 같은 관광지구 내 상점의 일요일 영업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경제 개혁법안을 내놓으면서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지난해 현지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근로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저 수준인 독일의 시그마르 가브리엘 경제장관도 마크롱 장관과 35시간 근로제를 재정비하는 내용의 공동 사업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해 논란이 확산됐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도 근무 시간 제한을 포함한 노동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예테보리시의 근무시간 단축 효과를 분석하고 있는 벵트 로렌슨 시의회 위원은 “아직 결론을 내리긴 이르지만, 근무자들이 덜 일하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줄었고 업무의 질이 향상되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예테보리시의 사례가 스웨덴, 나아가 세계 각국에 교훈을 던져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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