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터키 전투기에 의해 자국 전투기가 격추된 지 나흘 만에 터키에 대한 제한적 금수조치 등 본격적인 ‘경제 보복’에 나섰다. 터키 정부가 이러한 보복을 우려해 뒤늦게 유화 제스처를 보냈지만 러시아는 결국 내민 손을 뿌리치고 갈등 구도를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28일(현지시간) 가디언 등 외신들은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터키에 대한 경제 제재 법령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제재 조치에는 터키산 상품 일부의 수입 금지와 러시아에서 터키로 향하는 전세기 운항 금지, 러시아 여행사들의 터키 체류일정이 포함된 여행상품 판매 중단 등이 포함됐다. 러시아에서 일하는 터키인들의 노동계약 연장도 금지된다. 이 같은 제재는 내년 1월 1일을 기해 정식 시행되나 이미 27일 러시아는 터키와 체결한 비자 면제 협정을 잠정 중단하는 등 일부 경제 제재들은 비공식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크렘린궁은 “국가 안보와 국익을 보호하고 우리 국민을 범죄 등 불법 행위로부터 지키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터키의 두 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이자 지난해에만 러시아 관광객 300만 명이 터키를 방문하는 등 관광산업에서도 차지하는 비중이 커 이러한 제재는 터키 경제에 막대한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의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브는 가디언에 “9만명에 가까운 터키 국적 노동자가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제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터키인의 숫자는 20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경제보복이 두려운 터키는 사건 발생 직후 격추의 정당성을 강조하던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서는 분위기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원하는 ‘사과’는 하지 않았지만 28일 터키 서부 발리케시르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 사건으로 진정한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총리도 “격추는 특정국에 반대하는 행위가 아니다”는 유화적인 입장을 언론을 통해 드러내는가 하면, 29일 “이런 상황에서도 대화 채널을 열어놓는 게 중요하다”라며 양국 정상이 30일 파리에서 개막하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만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터키는 24일 사건 이후 줄곧 “해당 전투기가 러시아 소속인지 몰랐다”라며 “터키가 속해있고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은 우리 비행기의 비행 시간과 지역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왔다.
한편 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과 터키간 정상회의에서는 EU의 난민대책에 터키가 협력하는 대가로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등 반대 급부를 논의한다고 AP 등이 보도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EU가 터키 정부에 30억유로(약 3조7,000억원)의 재정지원을 제공하고 비자 제한 완화와 터키의 EU 가입 논의 재개를 합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EU의 재정 지원 대가로 터키는 국경 보안 강화와 유럽에서 망명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민자를 도로 데려가는 일을 맡게 된다. 유럽위원회는 이들을 수용할 난민 시설 건설을 위해 터키에 제공하는 30억유로 중 50만유로(약 6억원)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터키의 EU 가입 협상 재개를 앞두고 EU가 터키의 인권상황과 민주화, 언론 자유, 사법제도 독립성 등을 부정적으로 판단함에 따라 향후 협상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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