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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 사람으로 세상읽기] 로자 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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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 사람으로 세상읽기] 로자 룩셈부르크

입력
2015.11.2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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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한국에서 처음으로 ‘로자 룩셈부르크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1980년 창설된 국제 로자 룩셈부르크 학회는 지난 35년간 2년마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학술 대회를 개최해왔는데, ‘아시아 사회주의와 유럽 사회주의’가 주제였던 이번 서울 대회의 파트너는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와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이었다.

주요 참석자로는 독문학자로 로자 책들을 여럿 번역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깊은 교분을 나눈 바 있는 일본의 이토 나리히코 학회 회장,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정면으로 다룬 소설 ‘민주 수업’의 작가이며 중국 저층문학의 선구자인 소설가 차오정루, 최근 몇 년 사이에 중국의 ‘신 노동자’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내서 주목을 받고 있는 뤼투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갑영, 황선길 등 로자 전공자들이 발표를 했다.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는 파리 코뮌이 성립한 해에 태어나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해에 죽었다. 로자가 죽고 나서 로자의 정치사상적 라이벌이었던 레닌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바 로자의 문제점을 거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독수리는 때때로 닭보다 낮게 날 수는 있지만 닭은 결코 독수리처럼 높이 비상할 수는 없다. 이 모든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독수리였으며 독수리로 남을 것이다.”

여성차별 속에 취리히대학 진학

로자는 러시아가 지배하던 폴란드 남동부의 작고 아름다운 도시 자모시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유한 유대인 목재상이었고, 로자 일가는 로자가 만 2세 때 바르샤바로 이주한다. 로자의 가족 모두는 폴란드어와 독일어를 구사했고, 로자는 김나지움에서 러시아어와 프랑스어를 배웠다. 다섯 살 무렵 로자는 엉덩이를 다쳐서 평생 다리를 절게 된다.

김나지움을 졸업한 로자는 스위스 취리히대학에 등록을 했는데, 당시까지 유럽에서는 여자가 대학을 다니고 학위를 따는 게 매우 드물고 어려웠다. 예를 들어, 러시아 여성 수학자 소피야 코발렙스카야는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강의를 듣기 위해서 교수 회의의 승인을 받아내야만 했다. 물론, 그 이전에 대학에 가기 위해서 여성들이 아버지나 남편의 허락을 얻어야만 했던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정치학, 중세사, 경제학 과목들을 공부한 로자는 폴란드의 산업 발전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땄다.

로자는 1898년에 위장 결혼을 한다. 당시 유럽에는 ‘하얀 결혼(white marriage)’이란 풍습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실질적인 상호 헌신과 구속 및 성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형식적인 부부 관계를 가리켰다. 형식적이라고는 하지만, 일정하게 법적, 종교적인 절차와 요식 행위를 거쳐야만 했다. 코발렙스카야도 위장 결혼을 했는데 그 경우는 수학 공부를 위한 자유로운 여행, 그러니까 요즘 말로는 거주ㆍ이전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였고, 로자의 경우는 독일 시민권을 획득함으로써 독일 및 유럽에서 자유로운 정치 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위장 결혼은 5년 간 지속되었다.

당시 독일에는 좌파 정당인 사민당이 상당한 조직적,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로자는 독일 사민당 및 ‘제2 인터내셔널(1889~1916)’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론가로서 로자는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에 대한 비판, 레닌주의 조직론에 대한 비판, 마르크스의 축적 및 재생산 이론에 대한 비판적 보완 작업, 독자적인 제국주의론의 제출 등과 같은 지적 작업을 해간다.

전쟁 반대하다 사민당 우파에 피살

혁명가로서 로자는 처음부터 국제주의자였고 또 국제주의자로서 죽었다. 로자는 당시 폴란드 독립에 관해서, 문제의 핵심은 폴란드의 자본주의적 발전에 있다고 보았다. 폴란드가 러시아 통치 영역 전체의 공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사태이므로 독일 및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해방 없이는 폴란드 독립이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당시 독일 사민당은 정치투쟁을 외면하는 조합주의적 우파가 장악하고 있었고, 이런 흐름에서 사민당 거의 대다수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 부르주아들에게 협력하면서 끌려 다니게 된다. 이에 반해, 로자가 속해 있던 사민당 내 소수 좌파 세력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노선을 택했다.

그런데, 러시아의 레닌이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함으로써 볼셰비키 혁명에 성공하게 되는데 반해서, 독일의 로자는 부르주아와 협력하던 사민당 우파 정권의 묵인과 비호 아래 퇴역 군인들로 이뤄진 용병대에 의해 살해되는 것이다. 로자는 1919년 1월 중순에 체포되어 온갖 모욕과 폭행을 당한 뒤 수송 도중에 살해되었고 그 시신은 운하에 버려진다. 동시에 체포되고 살해된 칼 리프크네히트 등과 함께 장례가 치러진 게 1월 하순이었고, 떠내려 온 시신이 발견된 것은 5월 말이었다. 로자는 그녀보다 50년쯤 뒤에 살해된 체 게바라와 더불어 20세기 혁명의 순교자적 아이콘이 되었다.

1914년 독일 의회에서는 사민당이 제국주의 전쟁을 위한 국채 발행에 찬성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제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 기술에 의해 생산된 대량 살상 무기에 의한 최초의 전쟁이었던 것으로 악명 높다. 군인만 900만 명이 죽었는데, 군인을 포함한 사망자 대부분은 ‘프롤레타리아트’였다. 따라서 당시 독일 사민당의 정책과 노선은 사회주의 이념 및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배신 행위였던 것이다. 로자와 로자의 동료들이 ‘스파르타쿠스 동맹’을 결성하고, 또 사민당과는 별개인 ‘독립사민당’을 창설한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였다.

진보 정치와 가부장제에 여전히 질문 던져

오늘날 로자가 갖는 중요성은 무엇일까. 두 가지 점에서 로자의 삶과 사상이 의미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우선,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와 관련해서다. 지난 14일 서울 도심에서는 10만 명이 참가한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농민 백남기씨는 경찰의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고 쓰러져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병원에 누워 있다. 그렇지만 눈에 띄는 정치적 변화는 거의 없다. 다만, 그로 인한 정치적 반작용의 하나로서 YS의 죽음이 겨우 며칠 동안 국민적 관심사가 된 정도다.

사람들 다수의 정치적 의사가 정치 제도권에 반영되지 못하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1999년 시애틀에서 WTO 반대 집회가 있었고 2011년 이후 계속해서 ‘월가를 점령하라’처럼 신자유주의 글로벌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결집 및 봉기 등이 있었다. 이것들은 나름대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지만, 그것의 객관적, 제도적 효과는 의문스러울 정도로 미미하다. 각 나라 및 지구 전체 수준에서 사람들 혹은 민중들의 정치적 의사가 제도적으로 봉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마찬가지다. 몇 년 간 여러 번에 걸쳐, 그리스 국민들 전체가 들고 일어났지만 결국 시리자 정부는 국제 독점 자본에게 정치적으로 투항하고 말았다.

로자 사상의 핵심 과제는 “억압당하고 학대 받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간은 어떤 식으로 해방되는가”이다. 이런 맥락에서 로자는 레닌과 논쟁해 나가는 과정에서, 대중의 혁명적 자발성을 강조하면서, 레닌주의에 고유한 관료적 중앙집권주의를 비판했다. 국민 다수를 정치적으로 대표할 수 있고 또 국민 다수가 참여하는 진보 좌파 정치의 복원이라는 점에서 로자는 매우 중요하다.

또 하나는 가부장제 자본주의에서 여성 삶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로자는 취리히대학 때 4년 연상의 라트비아 유대인 출신 혁명가 레오 요기헤스를 만나 상당 기간 동안 연애를 했고 잠시 동거도 했다. 로자가 사상가라면 레오는 조직가라고 할 수 있는데, 로자 입장에서는 레오가 매우 차갑고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남자였다.

로자가 레오에게 보낸 편지들 상당 부분은 상당히 서정적이거나 열정적인 로맨스의 감정으로 채워져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명백히 수동적이고 순응주의적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엄존한다. 여기에 감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나로서는 당혹스럽다. 로자가 혁명적, 전투적 사상가였기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로자의 삶은 대부분의 평범한 여성에게도 물음을 던진다고 할 수 있다. 즉, 장미(로자)와 사자(레오)로 이루어진 이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즉 결혼, 연애 관계에서 대체 어떻게 또 무엇을 바라면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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