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봉화 심심산골에 홀로 살고 있는 그 노인(88)는 이름을 밝히는 것도 얼굴이 노출되는 것도 꺼렸다. 이웃도 없는 외딴 집, 스러질듯한 흙벽 방안에서 들고 나온 손때 묻은 종이에는 어려운 한자들이 방사형으로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귀동냥으로나마 익숙한 풍수지리와 정감록부터 처음 들어보는 문헌까지 줄줄 꿴다. 그가 평생 섭렵한 지식과 지혜가 녹아 있는, 그러니까 세상과 우주를 항해하는 인생의 나침반처럼 보였다. 일반의 이해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설명에는 이 터를 지키는 분명한 이유와 신념이 담겨 있었다. 범인의 잣대로 왜 이런 곳에 살고 있냐고 던졌던 질문이 ‘재야의 고수’가 들이대는 논리에 속절없이 부끄러워진다.
멀티미디어부 차장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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