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상공인들, 전통시장 허름한 꽃집을 산뜻하게


포항지역 젊은 유지들이 허름한 전통시장을 살리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포항 북구 대신동 북부시장의 한 꽃집. 20년간 꽃을 팔아온 제일꽃집은 한 달 전 진짜 꽃집답게 새 단장했다. 허름하고 퇴락한 외관 대신 유리창에는 김춘수의 시 ‘꽃’의 한 구절이 새겨졌다. 가게 입구에 진열한 꽃에는 예쁜 손 글씨로 된 푯말이 꽂혀 있었다. 어지럽게 엉켜 불이라도 날 것 같던 전기배선과 낡은 계량기도 말끔히 정리됐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적산가옥에 터를 잡은 꽃가게는 이제 일본의 한 거리에 온 듯 이색적 느낌이 물씬 묻어난다.
꽃집을 새 단장한 이들은 가게 주인이 아닌 30~40대의 지역 젊은 상공인 40여명이다. 각자의 재능을 기부해 지역 주민들이 더 나은 삶의 터전을 갖고 지역 경제도 발전시키고자 지난해 ‘포항뉴리더’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뉴리더를 이끌고 있는 인물은 전통 장 제조업체인 영일인터내셔널 정연태(49)대표. 유명 제과업체 마케팅 총괄 본부장 출신인 정 대표는 포항 북구 죽장면에서 ‘죽장연’이라는 전통 장 브랜드로 세계 유명 식당을 섭렵,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한 유명 인사다. ‘포항뉴리더’에는 정 대표 외에도 공인회계사 김태진(43)씨와 지역 향토주택건설업체 삼구건설 최재혁(35)이사 등 4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포항뉴리더가 재능기부의 첫 대상지로 포항 북부시장(2만639.7㎡)을 택한 것은 60년의 역사만큼 시장 곳곳에 남아있는 흔적들에 반한 덕분이다. 북부시장은 포항을 대표하는 음식인 ‘물회’를 판매하는 횟집들이 최초로 들어선 곳이다. 또 일제시대 건축된 복층의 적산가옥이 수십 채 남아있다. KTX포항역사와 차로 10분 거리에 관광 명소인 영일대해수욕장이 지척인 위치도 포항뉴리더 회원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들의 기부를 시장 상인들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100여명의 상인 대다수가 60~70대의 노인들이었고 3년 전 대형 화재를 겪은 데다 시장 현대화 사업마저 실패한 터라 외부의 관심이 성가신 듯 했다. 회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수 차례 만나 113명의 시장 상인들을 설득해 지난 9월 포항 북부시장을 정식 전통시장으로 등록했다. 정부의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북부시장을 되살리는 첫 모델로 제일꽃집을 선정해 성공적으로 부활시킨 포항뉴리더 회원들은 중소기업청의 골목형시장, 문화관광형 시장, 글로벌 명품 시장 등의 사업을 단계별로 진행할 계획이다. 북부시장의 상점 외관만 바꾸는 게 아니라 미술과 음악, 음식 전문가들을 동원해 북부시장에 맞는 이미지를 입힐 예정이다.
포항뉴리더 정연태 회장은 “무엇보다 시장 상인들의 의지가 중요하기에 상인 교육도 함께 하고 포항시, 정부 산하 기관과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려 한다”며 “단순히 시장 현대화를 꾀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문화가 숨 쉬고, 누구나 먹고 놀 수 있는 지역의 또 다른 명소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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