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창당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병헌 최고위원은 며칠 전 김한길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명 변경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당명은 지난해 3월 김 의원이 이끌던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새정치연합이 통합하면서 태어났다. 전 최고위원은 지금의 당명을 탄생시킨 김 의원에게 창당 60주년을 맞아 당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당 이름을 바꿀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점을 설명하며, 김 의원에게 혹시 있을지 모르는 당명 교체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의원은 똑 부러진 답을 하지 않은 채 “상황 좀 봅시다”라는 답을 남겼다. 전 최고위원 측 관계자는 “이름을 바꾸긴 바꿔야 할 것 같은데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고 답답해 했다.
요즘 새정치연합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당명 교체다. 당 차원에서 전국 대의원 1만5,000여 명에게 당명 개정에 동의하는지 묻는 전화 설문조사(ARS)까지 진행 중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당명 교체 여부에 대한 설문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당 안팎의 상황이) 워낙 민감한 시기라 그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총선 앞둔 분위기 반전 카드”
당내에서는 당명을 바꿔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한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부르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호남의 한 중진의원은 “공식 회의 때도 새정치민주연합을 틀리지 않고 발음하는 참석자들이 별로 없고 다들 어정쩡하게 우리당이라고 부른다”며 “지역에 가면 이름 좀 쉽게 고치라는 원성도 많이 듣는다”고 전했다. 게다가 ‘새정치’ ‘새정연’ ‘새민련’ 등 줄여 쓰는 말 조차 쉽지 않다 보니 대놓고 옛 이름인 ‘민주당’이라고 쓰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참이슬’, ‘처음처럼’ 등의 브랜드를 만든 홍보 전문가인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브랜드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생각”이라며 “소비자가 더 이상 해당 제품을 구매하지 않아 매출이 줄어들면 기업은 긴장하며 브랜드의 움직임에 대해서 집중한다”며 당명 개정의 필요성을 줄곧 주장해 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명 교체를 가라앉은 당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한 전환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의 한 관계자는 “부정부패 스캔들은 아니지만 자기들끼리 매일 싸우는 당, 야성(野性)이 부족한 무기력한 야당 등 부정적 이미지가 큰 것도 사실”이라며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15년 동안 쓰던 한나라당을 내리고 새 간판을 걸어 성공을 거둔 새누리당의 사례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2011년 4ㆍ27 재보궐 선거 참패,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연패 이후 당내에서 이름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영남권 지지자들의 반발로 미뤄졌다. 그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DDOS) 공격과 고승덕 전 의원의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공개 파문으로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고 결국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스캔들로 얼룩진 여당이 이미지를 바꾸려는 술수’라는 야당과 외신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홍보전문가 조동원씨를 영입해 당명 개정을 밀어붙였다. 당시 국민공모를 통해 당 이름을 제안 받고 당 로고, 상징색(빨간색→파란색)과 함께 당명까지 싹 바꾼 새누리당의 모험은 선거에서 불리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과반 의석 확보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정치연합 핵심 관계자는 “당 이름을 바꾸는 일은 당원 그리고 국민들이 다 함께 참여하는 축제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당내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 당원들과 국민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전략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양날의 검 될 수 있다” 우려도
당내에서는 당명 개정의 필요성은 대체로 공감을 하면서도 계획대로 될지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다는 이들도 많다. 그 이유로 고질적 계파 갈등이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나 지금의 당명을 지은 김한길, 안철수 두 의원이 당내 비주류 진영을 대표하고 있고, 2월 문재인 대표 취임 이후 사사건건 문 대표와 각을 세워 왔다. 그렇지 않아도 2년도 안돼 이름을 바꾸는 것은 자신들의 결정에 문제가 있음을 일정 정도 인정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까닭에 달가울 리 없는 두 사람인데다 문 대표나 주류 진영에서 당명 개정을 적극 추진하다 보니 선뜻 환영할 수 없다는 분위기이다. 실제 안 의원 측 핵심 관계자는 “동네 목욕탕이 간판만 바꿔 단다고 고급 사우나가 될 리 없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문재인 대표가 당 대표 권한을 나눌 수 있다며 ‘문안박’ 연대를 제안했지만 “진정한 혁신이 우선돼야 한다”며 선뜻 받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당명 개정을 대놓고 찬성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때문에 당명을 바꾸자는 측도 분위기 살려보자는 시도가 자칫 당내 계파 갈등을 키우는 ‘양날의 검’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과 함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렇다고 무작정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기념사업추진위 관계자는 “내년 총선에서 효과를 보려면 늦어도 연말까지는 국민 공모 등을 거쳐 새 이름의 윤곽이 나와야 한다”며 “그렇다고 당내 구성원들이 충분히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나섰다가는 역풍이 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야당은 2000년 이후만으로도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민주당-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연합’까지 그 동안 야권의 분열, 통합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수시로 당 이름이 바뀌었던 전력도 부담스럽다. 또 다시 이름을 바꾸었을 때 정치적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는 걱정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기념사업추진위 측은 다음 주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당명 개정 여부를 최고위원회에서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과연 새 간판을 달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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