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64) 전 국정원장의 파기환송심 1차 공판에서 재판부가 사건핵심 증인인 국정원 직원의 증인 채택을 취소했다.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지 하루만의 결정에 대해 검찰이 반발하면서 재판이 다시 파행으로 치달았다. 재판부가 원 전 원장 측에 유리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수사외압 무죄’ 판결문의 증거 제출을 제안해 ‘기울어진 재판 진행’ 논란도 불거졌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김시철)는 27일 원 전 원장의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국정원 대북심리전단 직원 김모씨가 ‘증언이 어렵다’는 내용의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면서 법정에 증인으로 세우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씨는 국정원의 조직적 트윗글 작성을 증명할 트위터 계정목록을 자신의 이메일 첨부파일에 보관했던 직원이다. 이 첨부파일의 증거능력을 배척하고, 사건을 파기한 대법원 판단 취지에 비춰볼 때 그는 파기환송심의 결론을 좌우할 증인으로 간주된다.
김시철 부장판사도 지난 공판준비기일에는 김씨를 포함한 국정원 직원 7명에 대한 검찰의 증인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를 돌연 번복한 것에 대해 그는 “김씨가 원심에서 증인신문을 두 차례 받았다”며 “본인들이 나오겠다면 수용하지만 증언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검찰은 “증인이 얘기하기 싫거나 안 할 수도 있으니 증인 채택을 취소한다는 (재판부) 결정은 다른 사건 재판에서는 흔히 못 봤다”며 반발했다. 검찰은 “비밀성과 절대복종이 철칙인 국정원에서 원장이 증인 출석 허가를 안 하는 상황에서 어느 증인이 나오겠다고 손을 들겠느냐”며 “국정원장에게 허가하라는 공문을 보냈으니 증인신문 기일을 연기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도 재판부가 아랑곳하지 않자 검찰은 “증인 불출석을 유도하는 상황인가, 수긍하기 어렵다. 정식으로 이의 신청을 하겠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의견서 형태로 재판장에게 공식 항의하겠다는 뜻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원 전 원장의 변호인은 “재판 진행을 검사가 하냐”며 재판부를 감싸는 상황이 벌어졌다. 앞서 다섯 차례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도 변호인이 아닌 재판부가 검찰과 서로 다투고, 변호인은 구경꾼이 된 듯한 상황이 연출됐었다.
이날 공판에선 재판부가 변호인에게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수사개입 의혹 사건을 무죄 선고한 판결문을 증거로 제출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것도 논란이 됐다. 검찰은 재판장을 향해 “검사가 제출하지 않은 증거를 재판부가 임의로 제출해달라는 것은 당사자(검사나 변호인)가 제출한 증거로만 재판을 진행한다는 원칙에 어긋난다”고 따졌다. 재판부는 이에 “참고하자는 거다”라며 “1심부터 전부 무죄 판단이 나오다 보니 검찰이 안 낸다고 하면 변호인이 낼 의향이 있는지 물어본 것뿐”이라고 말했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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