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의미
로맹 가리 지음ㆍ백선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발행ㆍ136쪽ㆍ1만원

‘유럽의 교육’(1945)으로 주목을 받기 전 로맹 가리는 여느 젊은 작가들과 다름 없이 출판사들로부터 퇴짜를 맞고 다니던 초짜 소설가였다. 아들이 위대한 작가가 될 거라 굳게 믿었던 로맹 가리의 엄마는 “신문에 네 이름이 보이지 않던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고, 가리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기억 나는 아무 작가의 이름이나 대버린다. “이게 저예요. 가명으로 글을 쓰고 있어요.” 그가 말한 작가의 이름은 르포르타주 ‘인도차이나’를 쓴 앙드레 비올리로, 여성 작가였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공쿠르상 수상 작가가 된 로맹 가리는 이번엔 극심한 유명세를 이기지 못하고 에밀 아자르란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한다. 그를 퇴물 취급하던 사람들은 혜성 같이 나타난 천재 작가를 찬양하기 시작했고, 아자르의 이름으로 나온 ‘자기 앞의 생’(1975)은 중복 수상이 금지된 공쿠르상을 받는다.
1980년 겨울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기기 몇 달 전 로맹 가리는 캐나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삶에 대해 얘기했다. ‘내 삶의 의미’는 당시의 구술을 기록한 책으로, 지난해 로맹 가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됐다. 출연 전 에밀 아자르의 비밀을 밝히는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탈고해 놓은 그는 방송에서 아자르를 제외한 모든 이야기를 숨김없이 털어 놓는다. 어려웠던 시절 매음 아르바이트의 유혹을 받았던 일, 유엔 주재 프랑스 대변인 시절 오락가락하는 정부 입장을 대변하느라 신경쇠약에 걸려 인터뷰 때 헛소리를 한 일, 동료 대사가 소설에 등장하는 동성애자를 자신이라고 오해해 런던 발령이 무산된 일.
전투기 조종사, 외교관, 소설가, 영화 감독 등 비현실적일 정도로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가 가장 괴로워했던 것은 자신으로 살 수 없는 삶이다. 알코올에 손을 댄 적도 없는데 엄청난 술꾼이란 풍문이 따라 다녔고, 바람둥이(또는 성불구), 드골주의자 같은 말들도 평생을 좇아 다녔다.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고 싶어 했으나 대중의 환상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에 대해 얘기해달라는 진행자의 말에 그는 “난 내가 삶을 산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답한다.
“나는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내 삶에 의해 살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가 삶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삶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분명 우리는 삶에 조종당합니다.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미디어를 통해, 여러분의 카메라를 통해 대중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라는 기이한 현상은 사실 인간의 실제와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에 관해 쓰는 모든 것에서 매일 나를 보지만 나는 내가 끌고 다니는 그 이미지 속에서 결코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에밀 아자르는 작가가 자신을 숨기려고 만든 이름이 아니라, 로맹 가리를 허구의 이미지로 만들어버린 세상에서 다시 한 번 자신으로 살기 위해 만든 이름일지 모른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유서 마지막 줄엔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