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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윤리적 딜레마 사유실험

입력
2015.11.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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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원ㆍ이마출판사 편집팀장

이 책이 이마의 첫 책으로 선택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이 책을 통해 출판사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거나 앞으로의 출간 방향을 알리려는 의도가 크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느덧 열 권이 된 이마의 다양한 출간 목록을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교양서 비중을 절반 정도로 유지하되 편집자 각자가 관심 있는 분야로 기획을 확장해보자, 그리하여 어쨌든 살아남자, 라는 게 우리의 출사표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첫 책이 된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당신이 피할 수 없는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질문’은 영국의 대중 철학자 데이비드 에드먼즈가 쓴, 윤리ㆍ철학적 딜레마에 대한 책이다. 지난 50년간 철학적 난제였던 ‘트롤리 문제’(제동장치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가 달려오고 철로에 사람들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누구를 희생시킬 것인가)에 착안하여 다양한 윤리적 딜레마를 두고 윤리학뿐만 아니라 인지과학, 신경생리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진 사유 실험을 소개한다.

처음 원고를 검토했을 때는 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데다 학술서의 외관을 지닌 점, 윤리 철학이라는 다소 어려운 분야, 판매에 대한 우려 등 여러 불안 요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이 책이 놀라울 만큼 흥미로운 일상적, 역사적 일화를 다수 곁들여 유머러스한 문체로 트롤리 사유 실험을 변주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낙태와 태아의 도덕적 지위를 다룬 14쪽짜리 소논문에서 시작한 트롤리 문제가 실은 윤리학의 근본적 쟁점을 다루는 원형이자 도구가 되었다는 점, 삶과 죽음, 개인과 집단, 의도와 선택, 공공성과 정의에 관해 이토록 재미있게 풀어나갈 수 있다는 점. 교양서의 한 모범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처음에 가졌던 어렵고 딱딱한 책이라는 생각이 줄어 들면서 조금씩 독자들의 반응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표지에는 제목을 잘 드러내주는 삽화를 넣기로 결정했다. 공교롭게도 편집 종반 무렵 같은 주제를 다룬 책이 출간되는 바람에 출간 시기를 한 달쯤 미룰 수밖에 없었고 반응과 판매도 기대에 훨씬 못 미쳤지만 책을 만드는 동안 무척 즐거웠다.

이 책을 출간하고 10개월이 지난 현재, 세상은 더욱 복잡해졌고 판단을 유보하거나 중지하는 사안이 나날이 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천할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윤리적 범주의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고 비실천이 실천의 한 양식인 한, 자신의 사소한 선택과 판단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섬세하게 고민하는 것은 일상적이고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실실 웃으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놀라운 발견을 얻는 책, 이 책은 우연히 우리의 첫 책이 되었지만 다분히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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