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딸을 가진 친구가 학부모 모임에서 요즘 화제인 드라마 ‘송곳’ 이야기를 꺼냈다가 빈축을 산 얘기를 들려줬다. 우리 애들이 크면 비정규직이 더 많아질 텐데 큰일이다 했더니, 내 아이는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을 할 인재인데 얻다 대고 비정규직을 들이대냐는 반응들이었다고 했다. ‘송곳’은 2003년 해고에 맞서 노조 조직과 파업을 한 외국계 대형마트 까르푸에서 벌어졌던 일을 소재로 삼았다. 정말 ‘송곳’의 주인공들은 특별한 누군가일까.
지난달 롯데백화점 부산점 판매직원으로 일하다 직원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박유정(40)씨는 어떤가. 10여 년이나 백화점에서 세일 매대를 돌며 일했지만 그는 근로계약서도 없는 유령직원이었다. 백화점의 많은 동료가 그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산업재해보상 신청을 위한 서류로는 그런 이력을 입증할 수 없었다. 백화점의 직접 고용이 아니라 입점 업체가 고용하는 형태로 여러 브랜드를 돈 아르바르이트 사원이었기 때문이다.
원청사용자의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한 부당한 계약관계는 이제 흔한 지경이다. 10여 년 전 까르푸 사태를 현실로 소환한 ‘송곳’보다 훨씬 교묘하게 노동자를 옭아매고 있는 게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언제든 해고가 가능한 비정규직 숫자는 꾸준히 늘어 630만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 3명 중 1명꼴이다.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청년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곧 정년퇴임 하는 은사님이 청춘에 관한 책을 펴냈다. ‘서러울지언정 눈부시어라!’는 주문을 담았지만 파릇한 청춘의 기운보다는 가슴이 아릴 정도로 아픈 얘기가 더 많았다. 노(老)교수는 ‘능력과 자질도 이 정도면 아쉬울 게 없는 학생들. 마음 씀씀이가 어질고 선하기 짝이 없는 학생들. 그런데 이런 학생들이 모두 하나같이 힘들어 하고 있다. 도대체 이런 학생들이 왜 힘들어야 하는지 그저 화가 날 뿐이다. 그냥 막 울화통이 터진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냉소적인 나 같은 학생마저 ‘아, 선생님’ 하게 만드는 온돌 같은 마음씨를 가진 교수님은 과 학생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모두 기억했다. 제자가 아파하면 결코 외면하는 법이 없었다. 늘 청춘과 호흡하며 사는 대학교수 노릇이 누구는 마냥 행복하겠다 하지만 노교수는 버겁다고 했다. 청춘이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절절히 느끼기 때문이다.
까불거리던 제자가 취업을 앞두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수업시간에 조는 걸 꾸중하러 불렀는데, 술 한잔 기울이다 짧은 인생이 감당하기 버거웠을 복잡한 가족사와 딱한 사정을 듣고는 그날 밤 집에도 못 가고 연구실에서 남몰래 울었다고 책에 고백했다. ‘왜 이렇게 착하고 성실한 친구를 몰라주십니까. 정의는 어디 있는 겁니까. 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 거지같이.’
일전 찾아 뵌 자리에서도 사회로 나오기 전 청춘의 권리를 마음대로 누려볼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던 대학도 무너진 지 오래라며 안타까워했다. 혼자 밥 먹고 도서관에 처박히고,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든 내 취업자리만 골몰하게 사회가 내몰고 있다는 것. 저만 잘 사느라 애들이 썩는 것도 사회가 뒤틀린 것도 외면하는 교수들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성토했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국정원의 불법 선거 개입을 규탄하는 교수 시국선언을 앞장서 조직하는 등 몸 사리지 않았던 노교수는 청춘에게 당부한다. 권력의 박수부대가 되지 말길, 힘 있는 자가 ‘조용히 해’라고 말하면 ‘들어 봐’라고 대꾸하길.
기득권을 가진 윗세대가 펄떡이는 청춘에게 비정규직이라는 족쇄를 채워 손발마저 묶어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청춘에게 위로받지 않을 권리를 돌려주자. 위로를 건네는 대신 그럴듯한 직업과 아닌 직업의 격차를 줄이고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자. 머지않아 청년이 될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부조리로 가득 찬 사회에서 나만, 내 아이만은 끝까지 안온할 거라는 순진함이 위태로워서 더 처연하다.
채지은 기획취재부기자 c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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