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에는 해외에서 온 조문사절과 주한외교단도 대거 참석해 고인을 기렸다.
해외 조문사절단의 규모는 4개국으로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에 비해 크게 줄었다. 당시에는 미국, 중국을 포함한 12개국에서 조문사절을 파견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당시 국장(6일)에 비해 이번 국가장(5일)은 장례기간이 하루 짧은데다 주말까지 끼어 있어 조문단 파견을 준비할 여유가 부족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주한대사가 자국 대표 자격으로 영결식에 참석했으며, 주한대사(96개)와 국제기구(5개) 대표 등 100여명이라고 외교부는 전했다.
북한은 영결식이 거행된 이날까지 김 전 대통령 서거에 침묵했다. 조문사절단은 커녕 조전도 없었고 서거 소식을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6년 전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당시 북한은 두 대통령의 서거 관련 소식을 이튿날 신속히 보도했고 남측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의 조문도 보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에는 김기남 당비서 등 6명으로 꾸려진 조문사절단까지 파견했다.
북한의 외면은 김 전 대통령과의 악연 탓으로 풀이된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초에는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씨를 송환하며 대북유화책을 꺼내 들었고, 북한이 핵비확산기구(NPT) 탈퇴하며 북핵위기가 고조됐을 때도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며 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94년 김일성 사망으로 회담은 무산된 뒤 조문단 파견의 적절성을 둘러싼 '조문 파동'을 계기로 대북강경책으로 급선회했다.
송은미기자 my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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