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대화에서 ‘게’와 ‘개’의 발음을 구분 짓는 한국인은 의외로 많지 않다. 대충 발성해도 문맥으로 알아들을 뿐이다. 영어에서 bat과 bet, man-men, bad-bed, sat-set, mat-met, than-then, pan-pen, land-lend, band-bend, tan-ten, sad-said, Anne-Emma 등을 제대로 구분해서 발음하는 원어민도 많지 않다. Tan의 a발음은 ‘애~’처럼 길게 발음하면 되고 ten의 e는 짧은 ‘에’로 하면 해결되지만 원어민일지라도 ‘대충 얼버무리는 발음’(lazy accent)을 하게 되면 무성의한 발성이라는 지적을 받게 된다.
모음이야말로 표준어와 사투리의 구별 기준이 된다. 영국 발음과 미국 발음의 차이를 만들기도 하다. 미국에서 남부 발음이 북서부와 다른 점도 바로 모음을 길게 늘어뜨려서 유별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남부 발음은 Southern drawl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그 배경을 보면 남부 지역에서 흑인 노예나 초기 정착민들이 술 마시고 대화를 할 때 흐느적거리는 발음을 한 데서 나왔다는 근거로 ‘alcoholic slur’라고 부른다. 호주 사람들이 ‘Sunday’의 발음을 ‘썬데이’가 아니라 ‘썬다이’나 ‘썬다~’로 발성하면 일요일이 아니라 ‘Son die’처럼 들리는데 이런 식의 호주 발음을 두고 ‘drunken Aussie accents’(술 취한 호주인들의 억양)라고 부른다. 이 역시 ‘초기 정착민들이 술 취했을 때 하던 발성’이 그대로 후세에 전해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물론 호주 발음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Sydney, Melbourne, Brisbane의 발음이 Canberra, Adelaide, Hobart 도시의 발음과 다르다. 그러나 소위 ‘drunken Aussie-speak’라 불리는 발음은 세계 언어학자들의 일관된 관찰이고 지적이다.
그 배경으로 호주 정착 초기의 발음을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초기 정착민들이란 영국에서 호주로 유배되어 온 전과자들이나 영국과 아일랜드 도처에서 이민 온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이 뒤섞여 살면서 비정통 발음이 나왔다는 분석이다. 호주인들의 3분의 1은 거만하게 대충 발성을 하는데 t, l, s 등을 생략하기도 하고 모음의 경우 a와 e, i와 oi 발음 등을 혼용한다. 영국이나 미국에 비해 리듬 대신 평조 발성과 콧소리 발음이 많다. 또한 음절 생략도 많은 편이다. 영국의 처칠 수상이 이러한 호주의 발음을 두고 ‘모국어 영어를 심하게 모독한 처사’라고 말했을 정도다. 독설로 유명한 미국의 Mark Twain은 호주 발음에 축약과 음절 생략이 많은 대신 영국 발음에 비해 상하 운율 리듬이 적고 속삭이듯 발성하는 특징이 ‘독특하게 들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세계 영어권 사람들이 호주 발음에 대해 ‘They sound drunk and dumb’라고 지적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영어 공부를 할 때는 ‘lazy accent’를 참고만 할 뿐 학습 모델로 삼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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