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르’와 ‘술탄’의 대결로 불리며, 전세계를 긴장시켰던 터키 공군의 러시아 전투기 격추 사건은 차츰 진전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 지역 전문가들도 확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가뜩이나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양국이 중요한 교역 파트너인 상대국 시장을 쉽사리 포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는 외견상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다. 우선 푸틴 대통령은 26일 “터키 고위 지도부는 아직도 러시아에 전폭기 격추 사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으며, 피해 배상을 하겠다는 제안이나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전날에는 터키 접경 시리아 지역에 대한 폭격을 계속하겠다고 25일 밝혔고, 시리아 라타키아의 러시아 공군기지에 최신형 지대공 미사일 S-400 포대를 배치하기도 했다.
2007년 실전에 처음 배치된 S-400은 최고 속도가 마하 14, 최대 사거리 약 400㎞로 원래 미군 패트리어트 미사일처럼 적의 탄도 미사일 격추용으로 개발된 것으로 스텔스 폭격기를 포함한 모든 전투기를 공격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최신 무기이다. S-400의 시리아 배치만으로 터키 공군의 시리아 국경 주변 정찰임무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군은 이와 함께 지중해 인근 영공 순찰을 하는 자국 전투기 호위를 위해 모스크바 인근 대공미사일들을 전진 배치했다고 AP가 전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앞으로 우리 전투기에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는 모든 공중 목표물은 언제라도 파괴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또 터키 형제민족인 투르크멘족 반군이 활동하는 시리아 라타키아 일대 공습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26일 러시아 전투기가 터키와 시리아 접경지역인 시리아 아자즈 마을에서 주민들을 돕기 위해 건축자재를 나르던 터키의 원조 트럭을 공격해 7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이처럼 터키에 대한 도발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지만, 자칫 양국간 전면전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온건 작전에도 주력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거듭 “터키와 전쟁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터키가 나토의 동맹국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다가, 유가 하락 등으로 경제 침체가 심각한 가운데 천연가스 주요 시장인 터키를 잃을 수 없기 때문이다.
터키 역시 이날 구출된 추락 러 전투기 조종사가 “사전 경고를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자 즉시 경고 메시지 음성을 공개하는 등 러시아에 대한 공격이 정당한 것임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6일 “터키는 평화와 대화, 그리고 외교적 해법을 원한다”고 밝혔다. 터키 역시 이번 사건으로 러시아의 경제적 보복이 이어진다면 충격이 크다.
러시아는 터키의 경제적 약점을 파고 들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이날 “주요 합작 프로젝트에서 터키를 배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러시아 농업부도 향후 러시아가 터키에서 들여오던 농산품을 이란, 이스라엘산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터키는 천연가스를 비롯해 매년 250억달러 규모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또 터키 농산품 수출량의 20%를 러시아 시장에 수출하고 있다. 이처럼 터키와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도가 높아 확전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이 지역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보복은 군사적 행동이 아니라 경제 제재가 될 것”이라며 “매년 100만 명의 러시아 관광객이 찾던 터키로서는 러시아 정부의 여행 자제 권고에 따라 당장 타격을 입게 됐다”고 보도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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