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문제를 놓고 보수, 중도, 진보 진영이 26일 한 자리에 앉아 토론을 벌였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사회적 대화모임’(대화모임)과 대한불교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마련한 자리다. 이 모임은 우리 사회 발전을 위협하는 이념 갈등을 풀어가자는 취지로 지난해 11월 구성됐다. 도법 스님,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서경석 목사 등이 주축이다.
이날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표자들은 현 교과서의 좌편향 여부 등 여러 쟁점에 대해 시종일관 평행선을 달리는 듯 했지만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해 강요해선 안 되며 그간 성숙한 토론이 부족했다”는 공감대도 얻었다.
우선 이부영 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관을 새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같은 엄청난 사안을 밀어붙이기 전에 어디에서도 진지한 토론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인빈곤율이 49.6%로 OECD 최고인 나라를 두고 갑작스런 국정화로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냐”고 반문했다.
도법 스님은 대통령 및 여당 측의 밀어붙이기로 국론 분열이 심각해진 것을 우려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 또 다시 불이 났는데 대부분 정치적, 개인적 이익을 노리는 사람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념, 진영의 불을 지른다”며 “대통령이 앞장서고 여당대표와 의원들이 따라가며 불을 질렀는데 결국 나는 진짜고 너는 엉터리라는 식의 주장들이 극단으로 충돌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보수쪽 토론자로 초청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대통령이 갈등을 조정하기보다는 제압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민주적이거나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박 대통령이 ‘확고한 국가관’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건 제가 3공 때 듣던 단어로 그 내용이 무엇인지 의문”이라며 “ 국정화를 하지 않으면 북한의 사상적 지배를 받을 것이라는 말이 북한식 김일성주의에 물들 것이라는 뜻이라면 국민의 지적 수준을 과소평가하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가 정부가 노동정책 등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수호 이사장은 “더 낮은 임금, 더 쉬운 해소, 더 많은 비정규직 양산을 내용으로 하는 박근혜 표 노동정책으로 총파업이 시작되자 수세에 몰린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들고 나와 모든 사안이 이 블랙홀로 빠져들었다”며 “국정화가 강행돼 하나의 관점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초래될 혼란과 부작용이 두렵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서경석 목사는 한시적 국정화를 주장하며 “현 교과서가 지나친 좌편향이라 5년간 국정교과서를 만든 후 다시 검인정 교과서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본다”며 “학계가 만드는 대안교과서 제작 시도가 상당히 중요하며 정부가 여기에도 예산을 배정해 누가 더 좋은 교과서를 만드는지 의미 있는 경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부영 전 의원은 “박 대통령이 ‘건국 67주년 발언’ 등으로 새 교과서의 지침을 공식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상황을 돌이키기 어려우니 어떻게 쓰여질지를 고민하자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쿠데타를 하듯 역사관을 바꾸겠다는 자세를 계속 의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윤 전 장관은 “독점은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지금 벌어지는 교과서 논쟁은 실제로는 역사의식 경쟁이라기보다는 실존적 정치투쟁이라 이미 사생결단의 싸움이 돼 버렸다”며 “정치권이나 정부가 양보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만큼 상식적, 생산적 논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소통, 사회적 합의를 구하자면 누구라도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며 “자신은 절대선, 타인은 절대악이라는 구도 속에서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도법 스님은 “우리 사회에서는 일방적 주장을 부정하고 사실을 묻는 순간 돌팔매가 빗발처럼 날아오는데 누가 감히 진실을 물을 수 있겠냐”며 “사리사욕을 버리고 성실하게 진실을 찾자”며 다음 토론을 기약했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박규희 인턴기자(성신여대 국문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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