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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무대 위에 펼쳐지는 하루키 월드

입력
2015.11.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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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해변의 카프카' 한 장면. 원작 소설 속 뒤틀린 시공간을 투명 아크릴 상자로 구현했다. LG아트센터 제공
연극 '해변의 카프카' 한 장면. 원작 소설 속 뒤틀린 시공간을 투명 아크릴 상자로 구현했다. LG아트센터 제공

15살 소년 카프카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누이를 범한다’는 예언을 피하기 위해서 집을 떠난다. 어린 시절 사고로 기억을 잃고 대신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 정체 모를 노인 나카타의 여행도 시작된다. 둘을 이어주는 건 카프카의 첫사랑이자 미래의 엄마 사에키다. 카프카의 시간이 선조적으로 흐른다면, 나카타의 시간은 계절이 순환하는 것처럼 반복되고, 사에키의 시간은 ‘그날’ 이후 단절돼있다. 셋의 만남은 각자의 시공간을 이어주는 ‘입구의 돌’을 들어 올릴 때 가능한 일. 나카타를 돕던 호시노에게 KFC할아버지 커넬 샌더스가 이 돌의 위치를 알려주며 외친다. “이 세계엔 뒤틀림이라는 게 있거든.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이 세계가 3차원을 유지하는 거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가 무대 위에 펼쳐졌다. 24일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이 연극은 하루키 특유의 ‘세계의 뒤틀림’을 실사로 구현해내 많은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연출을 맡은 일본 연극계 거장 니나가와 유키오는 유동하는 소설 속 시공간을 무대 해체로 풀어낸다.

막이 오르면 카프카가 여행을 떠나는 트럭, 나카타가 사고를 당하는 숲, 박제된 사에키가 차례로 투명 아크릴 상자에 담겨 무대 위를 부유한다. 이어 카프카의 저택, 나카타의 공원, 사에키의 도서관과 이 모두를 이어주는 신비의 장소인 숲이 아크릴 상자에 갇혀 전시되고, 각 인물들은 ‘입구의 돌’을 열 듯 26개 상자 안으로 들어가 여행가방을 싸고, 책을 읽고, 살인을 하고, 섹스를 한다. 검은 옷을 입은 수십 명의 스태프가 이 상자들을 연결하고, 병치하고 해체하며 카프카와 니카타의 모험을 중계한다.

연극 '해변의 카프카'. LG아트센터 제공
연극 '해변의 카프카'. LG아트센터 제공

“해변의 의자에 카프카는 앉아서 세계를 움직이는 추를 생각하네 (…) 물에 빠진 소녀의 손가락은 입구의 돌을 찾네. 푸른 옷자락을 들추고 해변의 카프카를 보네.” 사에키가 ‘그날’을 떠올리며 부르는 노래가 울려 퍼지며 각자의 세계가 퍼즐처럼 하나로 이어진다.

400쪽 안팎의 2권짜리 소설을 2시간 40분으로 압축한 만큼 문학적 장치, 인용은 대폭 줄었다.‘겐지 이야기’등 고전은 물론 작품의 뼈대인 오이디푸스왕 언급조차 없다. 대신 조니 워커, 커넬 샌더슨 등 대중문화, 하루키 전매특허인 능청맞은 섹스신 등은 악착같이 재현해 소설을 읽지 않은 관객이라면 극 전개를 따라가기 힘들다.

2012년 호리프러덕션과 사이타미 예술극장이 공동제작한 이 작품은 뉴욕 링컨센터, 런던 바비칸센터, 일본 사이타마예술극장, 싱가포르 에스플라네이드 등 세계적인 극장에서 공연한 뒤 서울에서 피날레를 장식한다. 공연 마지막날인 28일째 100회 공연을 맞는다. (02)2005-0114

이윤주기자 misslee@han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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