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부터 운항 중단
항만청, 석연찮은 이유로 6개월 이상 ‘운휴’ 승인
해운사, 고물선박마저 매각… 면허취소 임박하자 다른 노선 배 투입 해 시늉만
경북 울진군 후포항은 육지에서 울릉도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항구다. 쾌속선으로 포항에선 3시간30분, 묵호는 3시간 가량 걸리지만 후포에선 2시간 10분이면 주파할 수 있다. 내년 말 동서6축 고속도로 상주-영덕 구간이 개통하면 영덕IC에서 승용차로 30분 가량이면 되는 후포항은 울릉도 관문 항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후포항과 울릉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슬그머니 사라진 지 1년이 넘었다. 해운사가 합리적 이유 없이 6개월 이상 운항하지 않으면 노선면허를 취소할 수 있지만 면허는 그대로 살아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해운업계와 포항지방해양수산청 등에 따르면 후포-울릉간 여객선은 지난해 6월부터 승객 수송이 전무하다. 지난달 초 223톤급 쾌속선 A호가 3일간 취항했지만 승객은 단 1명도 타지 않았다. A호도 현재 후포항이나 울릉도에도 없다. 수소문한 결과 A호는 지난 9월 취항 허가를 받은 뒤 10월에 3일간 잠시 ‘시험운항’을 하고 전남 목포의 한 조선소에서 선박검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외견상 선박검사와 겨울철 정기휴항 때문에 배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울릉도 여객노선은 매년 11월16일부터 이듬해 3월15일까지 겨울철에는 포항을 제외한 강릉, 묵호(동해)항은 정기적으로 휴항한다.
후포-울릉 노선이 휴면 노선이 된 것은 일단 노선부터 확보하려는 선사와 관계당국의 묵인 내지 편의 봐주기의 합작품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 노선에 배가 다니지 않은 시기는 지난해 6월부터다. 경매를 통해 노선면허를 확보한 J사는 부산-대마도를 오가던 363톤급 B호를 투입했다. 후포-울릉보다 더 짧은 노선을 다니던 선박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후포-울릉노선 부적합 지적을 받았다.
게다가 선사는 1년 이상 운항을 중단, 해운법 위반 의혹을 사고 있다. 해운법에는 “여객선 등 운송사업자가 6개월을 초과해 휴업할 수 없고, 이를 위반하면 면허취소 등의 처분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년 3개월 이상 운항을 중단했으므로 면허취소 사유가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지난 8월 “운송사업자가 장기간 휴항을 신청하면 그 사유를 제대로 심사해야 하나 포항지방수산청은 사업계획변경을 그대로 인가했다”며 “장기간 여객선을 운항하지 않고 면허만 유지, 항로를 잠식해 여객선 이용자의 불편을 유발하거나 신규사업자 진입을 막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포항지방해양수산청 관계자는 “여객 노선 면허가 선사의 재산권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장기간 휴항한다고 해서 규정대로 면허취소 등을 할 수는 없다”며 봐주기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J사가 지난해 고물선박을 잠시 투입했다가 운항을 중단했다. 그마저 지난 7월에 매각한 사실이 적발돼 포항수산청이 면허취소 절차의 첫 단계로 6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자 부랴부랴 다른 노선을 운항 중이던 A호를 구입해 3일간 투입했다. 선사의 운항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해당 해운사 측은 “부득이하게 오랜 기간 운항하지 못해 주민 등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며 “현재 중국에서 460톤급 쾌속선을 건조 중으로, 정기 휴항 만료일인 내년 3월 15일 이전에 준비를 마치고 정상적으로 운항하겠다”고 해명했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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