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전히 사업가라기보다 ‘게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사업은 김정주(넥슨), 김택진(엔씨소프트) 대표가 이미 잘 하고 있잖아요. 게임만 잘 만드는 1세대 개발자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스스로 ‘국내 게임업계를 만든 사람’이라고 농담조로 이야기할 만큼 그는 한국 게임 역사의 상직적 인물이다. 넥슨과 엔씨소프트, 두 게임업계의 양대 산맥도 그가 없었다면 아예 등장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는 1994년 김정주 대표와 넥슨을 창립한 뒤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개발했고 이후 김택진 대표의 부름을 받아 엔씨소프트의 최고 흥행작이자 대표게임 ‘리니지’를 만들었다. 자신이 일으킨 두 기업을 매번 박차고 나온 그를 두고 어떤 이는 ‘게임업계 스티브 잡스’라고도 부른다. 그는 ‘한국 온라인게임의 아버지’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다.
송 대표가 오랜만에 새로운 온라인 게임을 들고 돌아왔다. 5년간 개발 끝에 다음달 2일 선보이는 ‘문명 온라인’ 출시를 앞두고 25일 그를 만났다. “모바일 게임이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모든 사람이 모바일 게임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나라도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책임감을 갖고 이 게임을 제작했어요.”
문명 온라인은 미국 2K게임즈의 유명 컴퓨터(PC)용 패키지게임 ‘문명’의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해 엑스엘게임즈가 온라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으로 개발한 것이다. 로마, 이집트, 중국, 아즈텍 중 한 개 문명을 선택해 해당 문명을 발전시키는 게임으로, 동시에 수 만 명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송 대표가 이번 신작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그 자신이 문명 원작의 마니아이기도 하지만 기존 온라인 게임이 갖지 못한 장점 때문이다. 그는 이용자 개개인의 능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대다수 게임과 달리 문명 온라인은 수 많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방식이어서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감히 온라인 게임 최강자인 ‘리그오브레전드’(LOL)를 잡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 목표를 정하면 다들 미쳤다고 할 거에요. 다만 분명히 색다른 경험을 줄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문명 온라인으로 복귀한 그에게 과거 넥슨과 엔씨를 떠난 일은 아쉬움으로 남아있을 만 하다. 하지만 게임 개발자로서 해보고 싶은 것, 이룰만한 것은 거의 다 성취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물질적인 성공을 부차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사소한 다툼이 퇴사 계기였어요. 가끔 그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송 대표는 현재 거대기업 위주의 천편일률적인 게임 환경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현재 게임 시장에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게임을 띄우기 위해 거액의 마케팅비를 쏟아붓고 몇 개월 뒤 인기가 식으면 같은 방식으로 다른 게임을 띄우는 방식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 보니 10여년 전과 비교할 때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소자본 업체가 성공하기 어려운 구조다.
반면 혼자서 개발한 게임이라도 구글플레이 같은 소프트웨어 장터를 이용하면 전 세계 동시 출시가 가능하다. 따라서 소규모 업체들에게는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주어진 셈이다.
송 대표는 이처럼 양극단으로 갈린 게임 시장에서 ‘중간 지대’ 역할을 하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한국 게임업계에 이런 회사도 있구나, 여전히 신선한 게임을 만드는 업체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어요. 물론 ‘나는 넥슨 입사 하고 싶어, 엔씨 갈거야’하는 분들이 훨씬 더 많겠지만 제가 누군가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된다면 그것도 성공 아닐까요.”
이서희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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