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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특구’ 영월, 아프리카 미술 보고 DJㆍ기자 체험 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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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특구’ 영월, 아프리카 미술 보고 DJㆍ기자 체험 해봐요

입력
2015.11.2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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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미술박물관, 인도미술박물관, 조선민화박물관, 미디어기자박물관… 이름만 봐서는 서울이나 근교에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열거한 박물관은 모두 강원도에서도 작은 고을 영월에 있다. 2004년부터 박물관 특구사업을 추진하면서 현재 군내에 23개 박물관이 등록돼 있고, 비등록 박물관까지 치면 26개가 영월에 둥지를 트고 있다. 규모는 소박해도 내용은 알차다. 지역주민들과 문화적 소통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박물관을 위주로 영월 여행 일정을 짠다면 동강과 서강이 빚어놓은 비경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욕심 하나 내려놓는 호안다구박물관. 010-7689-5779, 김삿갓면 내리계곡로 1083.

차영미 관장이 남편 안형철씨와 폐교를 활용한 박물관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월=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차영미 관장이 남편 안형철씨와 폐교를 활용한 박물관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월=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욕심을 버려야만 차를 마실 수 있는 퇴욕배.
욕심을 버려야만 차를 마실 수 있는 퇴욕배.

다기라고 하면 흔히 그릇과 찻잔을 의미한다. 다구는 차를 만들고 즐길 때 사용하는 모든 도구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호안다구박물관은 찻잔 향료 화병 주전자 등 차와 관련된 다양한 도구 5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차나무가 자랄 수 없는 영월 땅에서도 끝자락, 경북 봉화로 연결되는 내리계곡 산골에 자리잡은 내력이 궁금하다. 차영미 관장의 명함에 새긴 성은 ‘수레 차(車)가 아니라 ‘차 차(茶)’다. 그만큼 차에 빠진 사람이다. “돈 버는 게 목적이었다면 하동이나 보성으로 갔겠죠?” 원래 고미술을 좋아해 도자기를 수집하다 보니 어디에 쓰이나 공부하게 되었고 그러다 차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취미로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됐다.

모두 애정이 묻어나는 작품이지만 차 관장이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것은 퇴욕배(退慾杯)다. 공자시대에는 보름달처럼 그윽하게 인자를 만족시킨다 하여 월명배(月明杯)라고도 한 이 잔의 특징은 욕심 버려야만 마실 수 있는 구조. 잔을 70% 이상 채우면 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고 모두 아래로 빠진다. 마실 때도 잔 중간에 솟은 용머리가 코에 부딪혀 한번에 들이킬 수 없고 조금씩 음미하며 마음을 비우게 된다.

또 하나 자랑거리는 커다란 술 항아리 여아홍(女兒紅), 중국에서는 딸을 낳으면 홍주와 보이차를 담았다. 차는 결혼식 날 하객에게 대접하고 홍주는 80년 후 마시는데 그 전에 죽으면 무덤에 함께 묻는다. 그러니까 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항아리엔 최소 80년이 넘은 홍주가 담겨있다. 이외에도 한 사람의 성장기를 표현한 찻잔세트, 입 양쪽으로 술을 흘릴 수 밖에 없는 고배(苦杯), 2,000년 된 화로와 철제 보온병 등 재미난 사연과 이야기를 품은 60다구가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 가득, 조선민화박물관. 033-375-6100. 김삿갓면 김삿갓로 432-10

혀를 내민 잉어의 모습을 표현한 어변성룡도.
혀를 내민 잉어의 모습을 표현한 어변성룡도.

조선민화박물관은 그림보다 해설이 맛깔 난 박물관이다.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면 정면에 가장 먼저 잉어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실제 잉어는 혀가 없지만 그림에는 혀가 있습니다. 경상도나 전라도에서는 ‘새빠지게 힘들다’고 말합니다. 혀가 나올 정도로 힘들었다는 말이죠. 이 그림은 시험을 앞둔 지인에게 주로 선물했는데, 몸에 지니는 것만으로 합격할 수는 없고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황하의 등용문을 거슬러 용이 된 잉어 고사를 표현한 ‘어변성룡도(漁變成龍圖)’에 대한 설명이다. 해설을 들을수록 점점 또렷해지는 그림 속으로 빠져든다.

어해도, 화조도 등 이름이 거창하지만 민화는 소박한 서민 정서를 담고 있어 단번에 친숙해진다. 까치와 호랑이 등 그림 속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데 해설사의 입담을 거치면 다시 한번 ‘아하’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조선말기 유행했던 민화는 대부분 작자 미상이다. 당시만 해도 화가를 ‘환쟁이’라 낮춰 부르던 시절이었다. 2층에는 공모전에서 수상한 현대 민화도 전시하고 있다.

국내 최초 민화전문박물관인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은 4,000여 점, 전시된 작품은 200여 점이다. 주요 작품에 대한 해설은 30~40분 정도 이어진다. 2층에는 ‘19금’ 춘화도(春畵圖) 전시실도 있다. 조선 후기와 일부 일본 작품이 있는데, 그림의 성격상 따로 해설은 하지 않는다.

▦해학과 풍자의 진수, 김삿갓문학관. 033-375-7900. 김삿갓면 김삿갓로 216-22

김삿갓 묘지기를 자처한 '돌아온 김삿갓' 최상락 해설사가 호탕한 웃음을 짓고 있다.
김삿갓 묘지기를 자처한 '돌아온 김삿갓' 최상락 해설사가 호탕한 웃음을 짓고 있다.
김삿갓문학관과 공원을 더 빛나게 하는 인물은 단연 ‘돌아온 김삿갓’을 자처하는 최상락 해설사다.
김삿갓문학관과 공원을 더 빛나게 하는 인물은 단연 ‘돌아온 김삿갓’을 자처하는 최상락 해설사다.

일출원생원(日出猿生原) 묘과서진사(猫過鼠盡死)

황혼문첨지(黃昏蚊?至) 야출조석사(夜出蚤席射)

“해 뜨니 원숭이가 들에 나오고, 고양이 지나가니 쥐가 모두 죽더라.

황혼이 되자 모기가 처마에서 기어 나오고, 밤에는 벼룩이 자리에 나와 쏘아대네.”

‘원생원(元生員)’이라는 시는 동물의 행태를 읊은 것에 불과하지만 생원·진사·첨지·석사 등 작은 지위를 이용해 거들먹거리는 군상들을 비꼬고 있다. 요새말로 ‘갑질’에 대한 풍자다. 김삿갓박물관은 유쾌한 언어유희로 사회의 부조리를 꿰뚫은 김병연의 작품과 그의 일대기를 전시하고 있다. 조부의 역적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백일장에서 장원급제 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삿갓 쓰고 세상을 유랑한 존재론적 고뇌도 엿보인다.

그러나 해학과 풍자의 대가를 기리는 박물관으로는 분위기가 다소 무겁고 진부하다. 오히려 김삿갓 특유의 경쾌함을 느끼기에는 박물관 앞 공원이 낫다. 김삿갓 묘 주변으로 방랑시인의 형상과 시비를 익살스럽게 배치했다. 특히 삿갓 쓰고 도포 입고 ‘돌아온 김삿갓’을 자처하는 최상락 해설사가 농익은 입담과 헛헛한 웃음으로 관광객을 맞는다.

▦원시 예술혼 불지피는 아프리카미술박물관. 033-372-3229. 김삿갓면 영월동로 1107-1

움막 형태의 뾰족한 지붕이 인상적인 아프리카미술박물관.
움막 형태의 뾰족한 지붕이 인상적인 아프리카미술박물관.
나이지리아 요로바 여인상
나이지리아 요로바 여인상

커다란 움집 모양의 외관부터 특이하다. 내부는 작은 아프리카다. 1층 전시실 입구의 나무조각 ‘조화로운 세계’는 흑·백·황 3인이 지구를 떠받친 모습의 나이지리아 작품이다. 깎을수록 색이 짙어지는 흑단나무의 특성을 살린 작품으로 아프리카와 흑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첫번째 전시물로 정했다. 1991년 주 나이지리아 대사를 지낸 조명행 원장의 의도가 반영된 배치다.

상설전시관에는 아프리카 전통부족의 조각과 현대 작품을 전시했다. 나무와 토기, 상아 등으로 만든 투박하면서도 강인한 조각과 마스크 작품이 전시돼 있다. 풍만한 가슴의 나이지리아 요로바 여인상, 강렬한 색채의 코트디부아르 구로 마스크, 머리조각이 화려한 오론 인물조각상 등의 작품은 현대미술에 영향을 준 아프리카 특유의 영감을 물씬 풍긴다. 2층 로비는 아프리카 16개국 대사관에서 기증한 생활용품과 장신구 등이 영구임대 형식으로 전시되고 있어 현대 아프리카의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선 나도 DJ, 라디오스타박물관. 033-372-8123. 영월읍 금강공원길 84-3.

라디오스타박물관 입구의 온에어 카페.
라디오스타박물관 입구의 온에어 카페.
0박물관 내부 녹음실에선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다
0박물관 내부 녹음실에선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다

영월에도 방송국이 있었다.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왕년의 가수 왕 최곤이 DJ로 활약한 곳이 바로 2004년까지 운영된 KBS영월방송국이다. 영월읍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숲이 우거진 아담한 동산에 자리잡은 그 방송국이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1층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라디오방송의 역사와 다양한 형태의 라디오를 전시했고, DJ전시관은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방송을 청취할 수 있는 추억의 공간으로 꾸몄다. 영화 ‘라디오스타’의 명장면을 30분 분량으로 압축한 영상도 상영한다.

2층은 라디오 DJ체험공간이다. 전문가용 라디오부스로 제작된 스튜디오에서 직접 녹음을 해서 간직할 수도 있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들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사연을 띄울 수 있는 시설이다. 대본 없이 녹음 하기가 부담스러운 방문객을 위해서 시보와 1분 뉴스, 단막극 등의 대본도 준비했다. 박물관 입구 라디오 모양의 예쁜 커피숍은 기념사진을 찍기 안성맞춤이다.

▦흥미로운 1일 기자 체험, 미디어기자박물관. 033-372-1094. 한반도면 서강로 1094.

‘아! 나의 조국’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고명진 관장.
‘아! 나의 조국’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고명진 관장.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착용한 완장이 1개 벽면에 가득하다.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착용한 완장이 1개 벽면에 가득하다.

‘아! 나의 조국’은 격동의 1980년대를 살아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사진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부산 문현로터리에서 한 시민이 태극기를 배경으로 웃옷을 벗어 던지고 절규하듯 달려 나오는 그 사진이다. 미디어기자박물관은 바로 그 장면을 찍은 한국일보 사진기자 출신 고명진 관장이 세운 박물관이다.

전시물도 시대상을 반영한 보도사진과 현장 기자들이 사용한 취재장비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오래된 타자기에서부터 수첩·마이크·헬멧·출입증·완장 등 기자들의 손때 묻은 물건들에는 아날로그 시대 기자들의 향수와 긴장감이 묻어난다. ‘프레스룸’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면서 타자로 기사를 쓰거나, 헬멧을 착용한 채 사진을 찍고, 마이크를 잡고 직접 리포트를 해보는 1일 기자체험은 아이들에게 최고 인기다.

고명진 관장은 “박물관은 과거를 회상하는 공간을 넘어 지역문화의 구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현재도 ‘영월사랑 시니어신문만들기’, 가족 문화교실인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수채화와 도예 프로그램인 ‘영월을 무지개색으로 물들이자’, 드론을 이용한 ‘무한상상실’ 등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공간으로 박물관을 활용하고 있다.

▦인도여행 계획하고 있다면, 인도미술박물관. 033-375-2883. 주천면 송학주천로 899-6.

수확의 춤을 표현한 왈리 부족의 그림
수확의 춤을 표현한 왈리 부족의 그림
박여송 관장이 부족 미술의 재료와 기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여송 관장이 부족 미술의 재료와 기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도미술박물관은 박여송 관장이 34년 전 인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모은 미술작품 3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인도의 매력은 다양성이죠. 힌두·불교·이슬람·궁중 미술 등이 다양하면서도 독창성을 띠고 있어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제1전시실의 주제는 다양함이다. 한 개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양탄자에서부터 청동인물기마상과 회화까지, 신의 숫자만 3억이 넘는다는 인도의 다양성 표현하고 있다.

박 관장이 특히 주목한 것은 민속미술과 부족미술이다. 제2전시실은 인도 민화를 주제로 했다. 그 중에서도 쇠똥으로 코팅한 흙벽에 쌀가루로 그림을 그렸다는 왈리족 그림은 세련됨에서 세계적 명품 디자인에 비유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수확의 기쁨을 표현한 춤과 부족의 삶터인 숲 등의 작품은 밑그림 없이 한번에 그려 나갔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밀하면서도 생동감 넘친다. 인도에서는 카스트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색이 제한되어 있다. 불가촉천민이 흙과 쇠똥으로 그렸다는 그림도 인상적이다.

다음 전시관은 창조의 신 브라흐마, 파괴의 신 시바, 평화의 신 비슈누 등 다양한 힌두교 신들의 조각상을 전시하고 있다. 박 관장은 “아무리 해도 인도의 일부에 불과할 수밖에 없지만 최대한 다양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인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미리 방문하면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한다.

[여행메모]

●호안다구박물관과 조선민화박물관, 김삿갓문학관,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이 김삿갓면에 있다. 문학관과 민화박물관이 위치한 김삿갓계곡은 농사를 지어 ‘먹고는 가도 지고는 못 간다’고 할 정도로 깊은 산골이었다. 최근에는 계곡 따라 외씨버선길이 나 있어 호젓하게 걸을 수 있다. ●아프리카박물관 바로 옆에는 영월동굴생태관이 함께 있다. 강 건너 고씨동굴을 관람하기 전에 둘러보면 사전지식을 얻을 수 있다. ●라디오박물관이 위치한 영월읍내에는 장릉과 단종역사관, 동강사진박물관, 곤충박물관 등이 있다. ●미디어기자박물관은 선암리 한반도지형과 가깝다. 쾌연재도자미술관도 인근이다. ●인도미술박물관이 위치한 주천면 소재지에는 술샘박물관이 있고, 호야지리박물관도 가까워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장릉 옆 장릉보리밥(033-374-3986)집은 일대에선 소문난 식당이다. 감자를 섞은 보리밥에 갖가지 나물이 푸짐하다. 북면 하늘샘송어횟집(033-372-8600)은 1년 내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샘물을 이용해 기른 송어를 회와 무침 튀김 등으로 내놓는다.

영월=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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