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연합뉴스 제공
한미약품의 잇따른 기술수출 낭보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미약품은 23일 중국 자이랩과 폐암신약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계약금 700만달러에 임상개발·허가·상업화에 따른 단계별 마일스톤으로 최대 8,500만 달러를 받게 되는 계약이다.
이로써 한미약품은 올해 현재까지 6건에 총 7조6000억원 상당의 기술수출 계약을 달성했다. 계약금으로 받는 금액만 해도 7,500여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거래되는 의약, 제약 업종의 순이익 7,330억을 뛰어넘는 것이다.
이러한 '대박' 행진에는 한미약품의 거침없는 투자 행보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흔한 복제약 생산 기업에 불과하던 한미약품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매출의 10% 이상을 R&D(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지금은 20%를 넘겼다.
■ R&D는 밑빠진 독? 독이 너무 클 뿐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간 한미약품이 쓴 R&D 투자액은 4,400억원이다. 2013년 제약업계 최초로 1,000억원을 돌파했고 2014년에는 1,525억원, 매출의 20%를 넘어섰다 .
그 이전에도 한미약품의 R&D 투자 성향에 대해 관계자들은 갑론을박을 주고받았다. 매출대비 투자비용이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국내 의약업계들은 리베이트와 같은 영업방식으로 '편하게' 돈을 버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한미약품도 오랜기간 그렇게 성장한 회사였다.
한미약품 임성기 회장이 R&D 회사로 바꾸고자 마음먹은 것은 2010년에 들어와서다. 한미약품은 2000년 의약분업으로 의원급 병원을 장악해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그런데 2009년 정부가 영업을 규제하면서 몇가지 의약품목의 가격을 20%나 내려야 했다. 이는 2010년에 창립 이후 첫 적자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임 회장의 경영 전략을 바꿔놨다.
한미약품의 연구소에서 30년 간 근무하며 소장의 자리에까지 올라있던 이관순 사장은 이 때 발탁된다. 영업 출신인 전임 임선민 사장 대신 연구원 출신에게 경영을 맡기겠다는 임 회장의 결정이었다.
제약업계의 많은 관계자들은 한미약품의 이러한 도전을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평가했지만 승자는 한미약품이었다.
이 사장은 지난 19일 한 콘퍼런스에서 "처음부터 국내용 신약 개발은 생각하지 않았다. 비용이 더 들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줄곧 연구개발을 진행했다"며 "정체기가 있었지만 투자를 1년 늦추면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해 오히려 R&D투자를 늘렸다"고 말했다.
올 초까지도 한미약품의 성공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지난 1월 한미약품이 알레그로에 217억원 상당의 투자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미약품의 주가는 다소 하락세를 나타냈다. 한미약품에 대한 전망이 좋지 않았다는 의미다. 증권사들도 한미약품의 목표가를 10만원 초반대로 설정했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난 3월 제약회사 릴리와의 계약이 성사되기 전까지 계속됐다.
최대 6억9,000만달러(약 1조3,000억원) 규모의 성과에 한미약품 주가는 10만원 전후에서 단숨에 20만원대로 급등했다. 증권가도 목표가를 20만원대로 상향 조정했다.
현재 한미약품의 주가는 80만원 초반대에 머물고 있다. 주가조작 논란이나 과대평가라는 주장에도 주가는 꺾이지 않는다.
■ 계획과 준비만 13년
이 사장은 최근 '철저한 계산과 준비'가 한미약품의 성공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2003년 연구소장 시절부터 랩스커버리 연구를 시작한 이 사장은 2006년에 작은 성과를 확인했다. 그리고 한미약품은 13년간 30명의 연구진과 R&D 비용의 60~70%를 여기에 투입했다.
랩스커버리는 한미약품의 기적에 지대한 역할을 해낸 기술로 약물의 효과 지속 시간을 늘려주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면 당뇨병 환자가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글로벌 신약 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영업력도 중요했다.
이 사장은 이를 위해 계획적으로 2012년부터 세계적인 당뇨병 관련한 인사들과 만남을 지속해왔다. 이 사장은 이들과 신뢰를 쌓으면서 끊임없이 논의하고 국제 학회에도 보고했다.
그 결과 지난 6월 보스턴에서 열린 당뇨학회에서 까다로운 선별 기준을 뚫고 11개의 신약 임상 결과를 발표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세계가 한미약품의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권세창 연구소장도 최근 랩스커버리의 성공 요인을 '타이밍'이라고 규정하며 계획과 준비가 중요했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후발주자로서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것인지 고민하고 그 결과에 따라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은 것에 의미를 두었다.
■ '포스트 한미약품'나타날까
업계 관계자들은 한미약품이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제약 기업이 됐다고 보고 있다.
이 사장은 그에 맞게 해외 영업망을 갖추거나 현지 M&A를 진행하는 등 해외 시장 진출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아직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신약이 상업화가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리스크도 있지만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한미약품의 성공에 따라 '포스트 한미약품'의 탄생 가능성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최근 바이오기업 코미팜은 주가가 한달 새 두배 이상 치솟는 등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는 중이다. 코미팜은 지난 12일 기업 설명회를 통해 이르면 이달 안으로 호주정부로부터 자사의 암성통증치료제 신약(PAX-1)이 판매허가를 받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코미팜은 2001년 PAX-1의 기술을 얻기 위해 독일의 독성학자 라데마커 박사에 250만 달러를 줬다.
다른 국내제약사들도 R&D 투자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지난 19일 서울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 참석한 베링거인겔하임, 사노피, 로슈 등 다국적 제약회사 관계자들은 한미약품의 성공 요인인 R&D투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R&D 비중이 높은 제약사가 주목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재웅 기자 jukoas@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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