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나오는 회장님이 정말 이상했다. 마치 얼이 빠진 사람 같았다. 차에 앉더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일 당장 영국 가는 비행기표를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현대건설의 격동기였던 1969~72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비서로 그림자처럼 수행했던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은 정 전 명예회장이 청와대에서 고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1970년의 어느 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이때 정 전 명예회장은 조선소를 짓기 위해 미국과 일본으로 뛰어다녔지만 차관 확보에 실패해 조선소 건립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이 같은 뜻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정 회장은 크게 혼이 났다.
정 전 회장은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 당시 박 전 대통령이 김학렬 부총리에게 “앞으로 정 회장이 어떤 사업을 한다 해도 모두 거절하시오. 상대도 하지 말란 말이오”라며 역정을 냈다고 밝혔는데 실상은 한층 더 심했다. 이 회장은 “알고 보니 박 전 대통령에게 ‘나가 죽어라’ ‘평생 감옥에서 살 생각하라’ 는 말까지 들었다”며 “청와대 부속실에서도 대통령이 그렇게 화를 낸 것은 처음이었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사에 한 획을 그은 ‘정주영 신화’는 경제개발을 밀어붙인 박정희 정권 때 만개했다. 당시 이 전 회장의 눈에 비친 박 전 대통령은 현대 성공 신화의 동반자이자 정 전 회장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이 회장은 “1972년에 현대건설은 매일 일이 터져 매일 부도 위기를 겪었다”며 “청와대에서 은행에 요청해 부도 위기를 넘기면 정 전 회장은 단골이던 무교갈비에 가서 한숨을 돌렸다”고 회고했다. 그는 “정 전 회장은 좋아하는 숯불갈비나 갈비탕을 먹은 뒤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맞은편에 있던 국내 최초의 볼링장에서 몇 게임하고 밤 12시가 다 돼서 집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조선소 착공 직후 1972년 8월 3일 결정된 사채 동결도 현대건설을 도운 조치로 기억했다. 그는 “명동 사채는 현대건설이 다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에 사채 동결로 자금 부담을 덜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 전 회장은 원래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지만 박 전 대통령 앞에서만은 달랐다. 현대건설이 1971년 강릉 경포대에 지은 강릉비치호텔(현 씨마크호텔) 관련 일화가 있다. 이 회장은 “유신을 선포한 그 해 8월15일에 박 전 대통령이 호텔에 하루 쉬러 온다고 해서 난리가 났다”며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예정을 넘겨 4박 5일 머무는 바람에 매일 밤 정 전 회장이 술을 마셨다”고 털어 놓았다.
말술이었던 박 전 대통령이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는 바람에 정 전 회장은 매번 일찍 취해 업혀 나왔다. 이 회장은 “강릉시내 미군 물품 공급 시장까지 뒤져서 술이란 술은 모두 모았다”고 회고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정 전 회장을 14년간 보필한 박정웅 메이텍 인터내셔널 회장도 저서 ‘이봐, 해봤어?’에서 “박 전 대통령 얘기를 할 때면 항상 음성을 가다듬고 자세를 바로 했다”며 박 전 대통령을 어려워한 정 전 회장의 모습을 묘사했다.
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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