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복제도 습관인가 보다. 특히 막장드라마 작가들이 더 그렇다. MBC 주말극 ‘내 딸 금사월’이 25%가 넘는 높은 시청률로 지상파 방송의 면을 세우고 있지만 부실한 내용에 심각한 자기복제로 시청자들의 비아냥을 받고 있다.
‘내 딸 금사월’은 SBS ‘아내의 유혹’ ‘천사의 유혹’, MBC ‘왔다! 장보리’를 집필했던 김순옥 작가의 작품. 출생의 비밀, 복수, 온갖 악행 등 한국 막장드라마의 패턴이 고스란히 살아 숨쉰다는 점에서 오직 시청률을 위한 드라마를 집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과거 자신의 드라마 에피소드까지 복제하고 있다. ‘내 딸 금사월’이 ‘왔다! 장보리’인지 ‘아내의 유혹’인지 헷갈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복수를 기반으로 했으니 나오는 캐릭터가 비슷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날로 먹는 듯한’ 에피소드 설정과 개연성 없는 패턴의 반복은 어처구니가 없다.
일단 ‘내 딸 금사월’의 신득예(전인화)는 ‘아내의 유혹’ 속 구은재(장서희)의 복사본이다. 신득예는 딸 금사월(백진희)을 건축가로 키우기 위해 해더 신이라는 인물로 변장하는데, 이 장면이 ‘아내의 유혹’의 민소희를 방불케 한다. 구은재가 눈 밑에 점 하나를 찍고 민소희라고 우기는, 막장드라마 역사에 길이 남을 설정을 패러디한 것. 전인화는 긴 헤어스타일의 가발과 안경을 착용한 채 휠체어에 앉는 것만으로 신득예에서 해더 신으로 변신했다. 눈빛과 말투를 바꾼 전인화의 변신은 시청자 기만에 가까운데도 ‘내 딸 금사월’을 가족드라마라 우기는 MBC는 전인화가 1인2역을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홍보했다. 한 두 회로 끝날 줄 알았던, 코미디보다 떨어지는 이런 설정은 장장 두 달 넘게 지속되는 중이다. 22일 유재석이 출연해 화제가 된 방송에서도 강만후(손창민) 회장과 만난 해더 신은 팔에 흉터가 없다는 것만으로 감쪽같이 모든 사람을 속인다. 점 하나로 모든 사람을 속인 민소희처럼.
‘왔다! 장보리’의 장보리(오연서)와 새 엄마 도혜옥(황영희)이 살았던 세트장을 이홍도(송하윤)와 시어머니 유권순(윤복인)의 집으로 재활용한 점 역시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더불어 앞뒤 가리지 않고 며느리에게 목청 높여 화를 내고 구박하는 유권순의 모습은 도혜옥을 그대로 복제했다.
희대의 막장드라마 작가로 불리는 임성한 작가도 연이은 복제품으로 끝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인어아가씨’의 은아리영(장서희) 캐릭터는 ‘하늘이시여’의 이자경(윤정희), ‘오로라공주’의 오로라(전소민), ‘압구정 백야’의 백야(박하나) 등으로 복사돼 모든 드라마에서 활용됐다. 또 ‘왕꽃선녀님’ ‘신기생뎐’ ‘오로라공주’까지 귀신에 빙의되거나 유체이탈로 숨지는 등 설득력 없는 장면들로 시청자들에 의해 퇴출운동까지 벌어졌던 게 엊그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청률만 높이면 된다는 생각일까. 지금 당장은 성과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임성한 작가의 예에서 보듯 자기복제의 수명은 오래 가지 않는다.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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