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현대예술의 플랫폼’을 자임하는 광주 광산동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25일 정식 개관한다. 전당을 구성하는 5개 원(院) 중 9월 아시아예술극장이 개장한 데 이어 이날 전시예술 중심의 문화창조원이 개관한다. 이 두 핵심기관을 뒤에서 떠받칠 문화정보원은 20세기 아시아 문화예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ㆍ가공해 현대 예술가와 연구자의 조력자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사료에서 아시아의 오늘을 본다
문화정보원의 입구 왼쪽에는 조선 순조 때 실학자 풍석 서유구(1764~1845)가 지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복본이 보인다. ‘임원경제지’는 당시엔 잡학 취급을 받던 농업ㆍ의학ㆍ요리ㆍ미술ㆍ건축 등 16개 분야에 걸쳐 생활문화 자료를 집대성한 백과사전이다. 문화정보원은 ‘현대판 임원경제지’를 표방한다. 문화정보원은 미술전시ㆍ영상ㆍ공연ㆍ음악 등 문화예술 분야부터, 건축ㆍ디자인ㆍ도시ㆍ전자상가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생활문화 전반에 관한 자료 축적을 목표로 삼고 있다.
2014년부터 연구 및 수집을 진행해 온 문화정보원은 한국의 시각예술 분야에서 먼저 성과를 보이고 있다. 체계적인 연구는커녕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은 한국의 사진 아카이브를 쌓아나가기 위해 원로 사진작가의 삶을 구술채록하고 있다. 건축전문 사진작가 임정의, 1970~80년대 상업사진계의 대부 김한용, 각각 광주와 부산에서 지역을 기록한 사진작가 강봉규와 정정회를 인터뷰하고 영상과 문서로 남겼다. 이들은 사진이 현대미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기 이전 직업이나 취미로 당대의 생활과 전통 문화를 사진에 담았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까지 미술계에서 비주류로 취급되다 최근 김구림과 이승택의 작품이 영국 테이트 모던에 걸리면서 재조명되는 행위예술 역시 같은 방식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활동하던 작가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장석원 정강자와 미술이론가 김복영 윤진섭이 ‘제4집단’ ‘공간과 시간(ST)’ ‘신체제’ 등 전위예술집단을 결성해 활동하던 시절을 회고했다.
당장 문화정보원의 자료 수집은 1960~70년대 동아시아 시각예술에 집중돼 있지만, 시대와 지역, 수집 분야를 확장하는 중이다. ‘아시아의 소리와 음악’은 현재 198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 자료 수집에서 1960~90년대 아시아 대중음악으로 나아가기 위해 12월 4일 심포지엄을 열고 아카이브 구성 방향을 설정한다.
이렇게 쌓아올린 자료는 죽은 역사로만 남지 않는다. ‘아시아문화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들에게 새로운 작업의 영감을 주고자 한다. 문화정보원과 암스테르담의 라익스아카데미가 각 4명의 작가ㆍ큐레이터를 선정해 총 6개월간 문화정보원에서는 자료 연구를, 라익스아카데미에서는 작품 제작을 하는 국제교류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김선정 문화정보원 예술감독은 “작가들이 아시아 예술 연구를 통해 새로운 작품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아시아 ‘메이커 운동’의 거점 자처
문화정보원이 과거의 자료를 축적한다면 문화창조원은 미래 기술을 동원한 첨단 예술의 현재를 제시한다. 가로 50m 세로 10m의 대형 전시장 복합1관은 12월 31일까지 일본의 전자음악가 이케다 료지의 영상작품 ‘테스트 패턴’으로 채워진다. 흰색과 검은색 바코드가 바닥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바로 옆 수장고에 설치된 독일의 예술가 집단 아트+콤의 ‘RGB|CMY 키네틱’은 색의 조합과 분해의 원리를 보여준다. 빛의 삼원색 빨강 초록 파랑(RGB)과 인쇄물에서 사용하는 3색 청록 자주 노랑(CMY)의 조화가 움직이는 원반 위로 비치는 3색 조명으로 표현된다. 목진요 문화창조원 예술감독은 “현 시대 가장 유명한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모였다”고 자부했다.
‘새로운 유라시아 프로젝트’에서 총감독 박경 캘리포니아샌디에이고대 시각미술과 교수는 원형 파빌리온 내부에 유라시아의 여러 도시를 하나의 도시처럼 섞은 360도 파노라마 영상을 보여준다. 아시아와 유럽이 실크로드를 통해 연결된 하나의 세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2017년 12월까지 복합3관에 전시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이밖에 ‘플라스틱 신화들’(복합2관)에서는 내년 5월 15일까지 아시아 각국 33팀의 작품을 선보인다.
화려한 전시 뒤에 숨은 문화창조원의 핵심은 창ㆍ제작센터다. 최근 문화예술계와 산업계에서 동시에 주목받는 ‘메이커 운동’의 새 거점을 자처한다. 메이커 운동이란 제작자의 아이디어와 첨단 기술을 결합시켜 맞춤형 작품ㆍ상품을 만들어 쓰자는 운동이다. 3D 프린터나 컴퓨터 수치제어(CNC)장비 등 정밀공작기계의 도움을 받으면 누구나 원하는 물건을 만들 수 있다.
25일부터 4일간 개관 기념 행사로 여는 ‘액트 페스티벌’은 ‘테크토닉스’ 즉 장인(tekton)을 주제로 한 전시와 워크숍으로 구성된다. 워크숍에서는 3D 프린터와 CNC,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사용법을 배울 수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제작자들이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새로운 문화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메이커 생태계’를 형성해 아시아 문화의 미래를 찾고자 한다. 1899-5566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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