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군산세관 건물. 한국관광공사 제공
전북 군산에서는 시간이 참 느리게 간다. 붉은 벽돌의 건물, 오래된 중국집, 옛 모습 오롯이 간직한 가옥들….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 시간 멈춘 거리가 반갑고 또 정겹다. 일상의 퍽퍽함에 지쳐있다면 군산 한 번 다녀온다.
군산에는 국가등록문화재가 9개가 있다. 군산은 일찌감치 번성했다. 조선의 3대 시장으로 꼽혔던 강경장의 입구가 되는 금강하구에 위치한 덕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군산의 최전성기는 일제강점기다. 조선의 양곡과 물자를 일본으로 빼돌리기 위한 전진기지가 군산이었다. 이 때문에 군산에는 일본인이 많이 살았고 이들은 철도와 도로, 은행과 상점 등을 건설했다. 이게 100여년 전의 일이다. 9개의 등록문화재 대부분은 당시 일본인이 일본인의 편의를 위해 짓고, 만든 것들이다.
아픈 역사 깃든 건물이 뭐가 대수일까 싶지만, 이런 흔적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다 보면 빼앗기고 당하던 당시 민초들의 삶과 저항정신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문화재로 지정한 의미도 여기에 있다. 한강 이남에서 가장 먼저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지역이 군산이다.
우선 '해망로'를 찾아간다. 군산내항을 따라 길게 뻗은 도로다. 일제강점기 때는 '본정통'으로 불리던 상업중심지로, 지금도 주변에는 당시의 흔적들이 오롯하다. 옛 조선은행건물, 옛 일본 18은행 건물, 군산세관 건물 등을 볼 수 있다.
옛 조선은행 건물이 가장 상징적이다. 1923년에 지어진, 당시 군산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일제강점기 군산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도 등장한다. 옛 일본 18은행은 1907년에 지어졌다. 1908년에 지은 옛 군산세관건물은 지금은 군산내항과 세금관련자료를 전시한 호남관세전시관으로 사용된다.
해망로에서 서너 블록 떨어진 중앙로까지 이어진 지역에는 당시 일본식 가옥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신흥동 일본식가옥(옛 히로쓰가옥)이 유명한데 일본식 가옥의 전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영화 '장군의 아들'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도 흥미롭다. 1913년에 현재의 위치에 들어섰는데 우리나라 사찰건물과 달리 지붕경사가 급하고 단청이 없으며 대웅전과 요사채가 떨어져 있지 않고 붙은 모습이 이색적이다.
이 외에도 소룡동의 제1수원지 제방, 임피면의 임피역사, 어청도 등대, 개정면의 일본인 농장창고, 중앙로의 해망굴 등이 등록문화재다.
해망로에서 동령고개 들머리로 가다보면 60년이 넘은 중국집 '빈해원'이 있고 중앙로에는 100년이 넘은 빵집 '이성당'이 있다. 죽성동에 있는 60여년 된 떡갈비집 완주옥 등도 군산의 명물이다.
김성환 기자 spam001@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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