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26일 판문점에서 실무접촉을 열기로 합의했지만, 당국회담이 실제 성사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회담 수석대표의 급(級)과 격(格), 의제를 둘러싼 대립으로 기 싸움만 하다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장애물은 회담 수석대표의 級 문제
실무접촉에서 가장 큰 장애물로 예상되는 것은 역시 급의 문제다. 남북은 지난 2013년 박근혜정부 들어 처음으로 남북 장관급 회담에 합의해놓고도, 회담 수석대표로 누가 나올지를 두고 신경전을 펼치다가 결국 회담 자체가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장관급 회담인 만큼 북한의 대남 업무를 총괄하는 김양건 당 비서를 맞상대로 지목했지만, 북한은 “전례가 없다”고 거부하며 옥신각신하다 결국 회담이 깨졌다.
그간 북한이 장관급 회담에 조평통 서기국장이나 조평통 간부에게 내각 참사라는 모자를 씌워 내보내왔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김양건을 내보낼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번 당국회담을 제안할 때도 우리 정부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 명의로 김양건에게 전통문을 보냈지만, 북측은 조평통 명의로 답신을 보내오며 신경전을 예고했다. 우리가 김양건을 고집하듯, 북측 역시 청와대 아니면 상대하지 않겠다고 나올 가능성도 높다.
이에 따라 무작정 장관급 회담을 고집하기 보다는 차관급으로 낮춰 선택지를 넓히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차관급으론 황부기 통일부 차관과 조태용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해당된다. 특히 조태용 1차장의 경우 2005년 9ㆍ19 공동성명 채택 당시 6자회담 차석 대표, 2013년 5월 6자회담 수석대표인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 활동하는 등 북핵 문제 전문가라는 점에서 향후 회담에서 북핵 문제 등을 다룰 때 강점이 있다. 만약 차관급으로 구성된다면 북측의 경우 숙청설로 자취를 감춘 원동연 통전부 제1부부장 대신 새로운 실세로 부상한 맹경일 제1부부장이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협상 카드 높이기 위해서 의제는 폭넓게
의제와 관련해선 사전에 우선순위를 정하되, 모든 현안이 회담 테이블에 올라가 다뤄지는 게 협상 전략을 높일 것이란 분석이다. 금강산 관광, 5ㆍ24 조치 해제, 이산가족 정례화 등 현안마다 입장 차가 극명해 개별 사안별로 접근하면 협상 판이 깨지기 십상이고, 서로가 반드시 관철시켜야 하는 현안을 맞교환하는 빅딜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내년 7월 당대회에서 경제적 성과를 강조하고, 대외 관계를 개선시키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만큼 이번 회담을 계기로 남북 대화 채널 복원을 최우선 목표로, 우리 정부도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 군은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5주기에 맞춰 K-9 자주포를 동원해 서북도서지역인근에서 해상사격훈련을 실시했지만 북측은 별다른 특이 동향을 보이지 않는 등 대화 분위기 조성에 힘을 쓰는 모습이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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