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늦게 다녔냐… 옷차림이…
피해자에 책임 전가하는 듯한 발언 잘못
대부분 가족들이 2차 가해자
비난 말고 피해자 편들어 줘야”
“‘늦은 시간에 왜 돌아다녔니’, ‘술은 또 왜 이렇게 많이 마신 거야.’……. 과거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무심코 던진 말들이 2차 피해를 주었더라고요. 성폭력은 결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주관한 제2회 폭력예방교육 ‘올해의 강의’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정현구(44ㆍ사진) 대구서부경찰서 112상황실 경감은 23일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성폭력의 책임은 가해자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1999년 경찰에 입문한 정 경감은 지난해 6월 범죄예방 강사로 위촉된 뒤 경찰과 교사,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성폭력, 학교폭력과 같은 폭력 예방 교육을 해오고 있다. “정 경감은 16년 간 경찰생활을 하며 겪은 생생한 사례를 제시하며 강연을 진행해 대중의 공감대를 끌어냈다”는 것이 여성가족부가 밝힌 최우수상 선정 이유다. 최근 그는 강연에서 남성 중심 사고방식’으로 성범죄 피해자들을 대하고,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해온 것에 대한 반성의 메시지를 자주 전한다. 정 경감은“피해자가 어떤 옷을 입고 특정 시간대에 다닌다고 해서 성범죄에 노출된다고 보기 어렵다”며“그런데도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할 때 노출이 심한 옷을 입지 말고, 밤 늦게 다니지 말라고 하는 등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해왔다”고 고백했다.‘선무당이 사람을 잡은 격’이었다는 것이다.
성범죄를 남성 위주로 바라봤던 그의 시각이 달라진 계기는 올해 2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받은 성희롱 예방 전문강사 교육이다. 그 과정에서 성범죄를 피해자의 탓으로 돌리는 인식이 문제 해결의 가장 큰 방해가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그가 성범죄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해 5월 무렵. 고등학교 2학년이던 한 남학생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휴대폰으로 여성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하다 경찰서에 불려 온 사건을 맡게 된 것이다. 초범인데다 잘못을 뉘우쳐 훈방조치를 했지만 며칠 후 학생의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소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 하던 아들이 범죄 때문에 좋은 대학에 갈 수 없게 됐다’고 생각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정 경감은 “죽은 어머니를 아들이 가장 먼저 발견했는데 그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다”며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남학생은 범죄에 손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성범죄를 줄이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좋다’와 ‘싫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의사표현을 읽어내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가족 등 주변인들이 피해자 입장에서 공감하는 것이 우선적인 해결책이 된다는 점도 덧붙였다. “2차 피해를 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가족이에요. 어렵게 부모나 형제ㆍ자매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놨는데, 가족들도 놀라서 순간 ‘거긴 왜 갔냐’는 식의 비난을 하게 되죠. 피해자가 말문을 닫으면 피해는 더 커집니다. 주변인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피해자의 편에서 격려해야 성범죄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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